사형 집행이나 피의자 얼굴 공개 등에 대한 정부ㆍ여당의 기류가 심상찮다. 사형 집행 재개 주장은 감형이나 사면이 배제된 종신형 도입, 강력범의 유전자 정보 채취 보관, 흉악범은 피의자 단계에서 얼굴 공개 등의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흉악범 얼굴 공개는 이미 당정이 '중범죄자의 얼굴 공개법'(가칭) 제정에 합의했고,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지난주 국회답변에서 구체적 절차와 요건까지 소개했다.
그는 범죄가 중대하고, 공익상 명확한 필요가 있고, 증거가 분명해서 오판 여지가 없다는 등을 요건으로 수사기관에 설치된 중립적 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개별적으로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일련의 흐름은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이 들쑤신 여론의 반영이다. 정부ㆍ여당은 여론을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말 책임 있는 정부ㆍ여당이라면 비등한 여론에 순응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지나친 여론의 쏠림을 견제할 줄도 알아야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도 당정은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일방적 강경기류에 올라타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힘겹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국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 이후 전혀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2007년 말에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됐다. 사형제 찬반과는 별도로 많은 국민이 이를 사회발전의 한 징표로 반겼다.
수사기관이나 언론이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으려 애쓴 것도 인권 의식이 피의자에까지 미칠 정도로 깊고 넓어진 결과였다. 인류 보편의 형사정책 발전 추세와도 부합하는 이런 역사적 흐름을 막거나 거스르려면 그만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강호순 사건 이후 당정의 의욕만 앞서갈 뿐 아직 그런 논의는 이뤄진 바 없다.
지금 당정이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길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의 호흡 조절과 뒤 돌아보기는 주문하고 싶다. 그조차 소홀히 한다면 여론을 부채질하려는 의도만 뚜렷해진다. 더구나 강호순 사건을 활용토록 한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까지 밝혀진 마당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