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큼 혈통보존 욕구가 강한 민족도 드물다.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지만 자신의 피가 섞인 아들로 대를 이으려는 순혈주의(純血主義), 남아선호(男兒選好) 의식은 아직도 건재하다. 조선시대에 아들을 낳지 못한 여성이 '칠거지악'에 따라 집에서 쫓겨났던 것이나, 이 시대 불임 여성들이 여린 몸으로 독한 배란(排卵) 주사의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것은 시대만 다를 뿐 모두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가지려는 혈통 보존 욕구가 빚어낸 모습이다. 입양보다 동남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수 십 배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27세 연상의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두 딸을 낳자마자 남편과 그의 전 부인에게 빼앗기고 이혼까지 당한 베트남 신부 투하(가명ㆍ26) 씨의 경우는 한국인의 비뚤어진 혈통의식의 폐단이 드러난 극단적 사례다. 전후를 종합하면 이 남성은 한국인 부인과'이혼→베트남 신부와 결혼→출산 후 아이만 확보→베트남 신부와 이혼→재결합'이라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남자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필요했을 뿐, 투하 씨가 한 여성과 어머니로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더구나 투하 씨는 양육권 소송에 졌다.
▦국내 다문화 가정 중 30% 이상이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 여성이 결합한 가정이다. 베트남은 한국군대의 베트남전 참전과 최근의 경제협력으로 한국인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나라다. 베트남 여성들은 근면ㆍ성실하고 자기희생적 이미지도 강해 한국 농촌 총각들이 선호하는 결혼 상대다. 베트남 국민은 외세의 침략에 굴하지 않은 민족으로서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베트남 여성의 경제ㆍ사회적 지위는 한국 여성보다 훨씬 높다. 그런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동남아인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 낡은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베트남 신부들을 대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베트남 부인을 학대ㆍ폭행해 숨지게 하고, 출산 후 아이만 빼앗고 쫓아내는 한국인들의 행동은 반인륜적이다. 한국인 여성들이 외국에서 같은 경우를 당했을 때를 가정해 보면 베트남 국민들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베트남 신부와 함께 사랑이 충만한 가정을 꾸밀 생각이 아니라면, 또 그들을 우리 사회의 편견과 핍박으로부터 지켜줄 자신이 없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 신부를 '현대판 씨받이', 성적 욕구를 해소할 '성노리개'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잔존하는 한 베트남 신부들의 고통스런 신음과 절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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