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서 30대 제과점 여주인이 괴한 2명에게 납치됐다가 19시간 만에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경찰은 미숙한 검거작전으로 범인들을 놓치고, 자칫 인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수사 기법을 동원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에 따르면 10일 밤 11시40분 서울 강서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박모(39)씨가 가게에 침입한 괴한들에게 납치 당했다.
20~30대로 추정되는 용의자 두 명은 박씨를 때리고 눈을 가려 자신들의 승용차에 감금한 뒤 박씨의 휴대폰으로 남편 유모(39)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몸값 7,000만 원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범인들은 가게 계산대에서 80만원을 털고 박씨의 신용카드에서 120만원을 인출해 현금 200만원을 강탈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위치추적장치(GPS)가 장착된 가방에 1만원권 위조지폐 7,000장을 담아 11일 오후 2시쯤 남편 유씨로 하여금 성산대교 남단의 접선 장소로 가지고 가도록 했다.
위폐가 든 가방이 오토바이를 탄 범인에게 전달되자, 현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검거팀이 추격에 나섰다. 검거팀은 택시 2대, 승용차 6대, 오토바이 4대를 이용해 일반인인 것처럼 가장했다. 신호대기 중 범인과 나란히 서는 순간도 있었지만 경찰은 공범까지 체포하기 위해 곧바로 검거하지 않은 채 계속 추격했다.
그러나 추격전은 양천구 목동의 한 도로변에서 범인이 신호를 무시하고 내리막길을 내달려 골목길로 사라지면서 20여분 만에 막을 내렸다. 경찰은 "교통체증으로 차량 추격이 어려웠고, 범인이 근처 지리에 밝아 오토바이 추격에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신도림역 인근에서 위폐는 사라진 채 빈 가방만 발견됐다. 가방이 발견될 때까지 1시간40분 가량의 시간이 있었으나, GPS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위폐를 챙긴 범인들은 오후 6시30분쯤 경기 광명시 광명역 부근에 인질 박씨를 내려놓고 종적을 감췄다. 박씨는 큰 외상은 없지만 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이 범인들에게 위폐를 건넨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높다. 경찰은 "위폐는 1만원짜리 지폐를 컬러 복사한 것으로, 홀로그램 부분이 까맣고 지질이 달라 쉽게 가짜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범인들이 다급한 상황에서 위폐임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걸로 보이지만, 만약 사실을 알았다면 인질에게 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 전문가는 "실제 지폐에 특수장치를 부착한 돈을 사용하는 선진국의 수사기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들이 타고 도주한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이들의 이동경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 TV 화면을 분석하는 한편, 위폐 사용에 대비해 한국은행과 전국 경찰서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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