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 산불에 속상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 산불에 속상한다

입력
2009.02.19 06:59
0 0

참으로 반가운 단비가 내렸다. 어지러운 세태에도 순수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반가운 비 소식이다. 겨울 가뭄을 덜어주는 봄비는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을 가진 수많은 존재들에게 무척 반갑다. 한참 물이 오를 나무들도, 어두운 땅속을 탈출하고픈 풀들의 여린 새싹들도, 모두 봄비를 기다린다.

봄비 소식은 무엇보다 산림 공무원들을 기쁘게 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산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발을 뻗고 편한 잠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숱한 생명과 우리 삶의 터전

올 겨울, 국민의 여린 가슴을 놀라게 한 처참한 불소식이 유난히 많았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들려온 처참한 화재 소식부터 경남 창녕 화왕산의 산불, 저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 소식까지. 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더없이 긴요한 수단이지만, 때로 이렇게 끔찍한 참화로 우리 모두를 불안하고 가슴 아프게 한다.

건조한 봄의 숲은 산불 위험이 매우 크다. 전체 산불의 67%가 이 시기에 일어난다. 크게 난 산불은 정말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다. 수십 년 애써 가꾼 숲도, 수백 년 이어온 문화재도, 귀중한 인명도. 숲 속에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터전도 잃어버린다. 해마다 살금살금 재미 보며 따내던 송이도 고로쇠 물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는 알게 모르게 산불이 420건 정도 발생한다. 애써 가꾼 숲이 산불로 사라지는 면적은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5배에 달한다. 헤아리기 어려운 사회적ㆍ 생태적 손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계산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만 4,000억원이 넘는다.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이렇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는 산불 대부분이 아주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자연 발화에 의한 산불은 거의 없다. 산불의 절반 가까이가 산에 온 사람들의 담뱃불 부주의 같은 실수에서 비롯된다. 그 다음이 논이나 밭 두렁을 태우다 실수로 불을 내는 것이고, 쓰레기를 태우거나 성묘객의 부주의에 의한 산불도 많다. 조금만 조심하면 대부분 막을 수 있는 것이 산불이다.

197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산림녹화 정책과 온 국민의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의 숲은 매우 울창해졌다. 동시에 숲 바닥엔 불 탈 수 있는 나뭇잎 등이 많이 쌓여 있다. 게다가 산의 경사가 심해 불이 붙으면 연소가 매우 빠르다. 평지보다 8배쯤 빨리 불이 퍼져 나간다. 여기에 돌풍까지 불면 어떤 방법으로도 막기 어려워진다.

산림과 인연을 맺고 사는 공무원들은 담당자이건 아니건 간에 주말과 공휴일은 산불예방 지원 근무로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한다. 설날도 정월대보름날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산길 들길을 돌아다니다가 산불과 상관없다며 외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속이 상한다.

숲과 나라 사랑에 앞장서야

몇 해전 동해안 일대가 모두 불탄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 하던 때였다. 산불 예방 계도를 나갔다가 논두렁을 태우는 주민을 말렸더니, 대뜸 "내 논 내가 태우는 데 무슨 상관이야, 잡혀가도 내가 잡혀가"라며 막말을 하는 게 아닌가. 누구보다 산에 가까이 살고, 숲을 아껴야 할 분이 산불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어 크게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숲을 사랑한다면, 국토가 푸르고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주변을 일깨우는 산불예방 홍보대사가 되어야 한다. 아까시 나무에 잎이 나기 시작할 즈음, 나무 줄기와 잎에 물이 올라 숲이 더 이상 건조하지 않을 때까지만이라도.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