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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작'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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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작'의 무게

입력
2009.02.1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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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일본 작가들을 만났을 때였다. 떠듬떠듬 통성명이 끝나자 그들은 명함을 한 묶음 꺼내 우리들에게 쫙 뿌렸다. 그 무렵 한국 작가들 중에서 명함을 가진 이는 손꼽을 정도였다. 아직은 명함을 내밀기가 쑥스럽다는, 문학에 대한 외경과 겸손이 전반적이 분위기였다. 작가의 명함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준은 없지만 일본어만 아니라면 그들의 명함은 명합첩 속의 우리나라 공무원 명함이나 거리에서 받은 스킨케어샵의 명함과 구별되지 않았다.

세월 흘러 우리 작가들도 명함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적미적 쪽지 건네듯 명함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소리가 아닌 문자로 기억하면 오래 기억할 수 있어 나는 명함을 받을 때마다 밑줄 치듯 이름을 읽는다. 그렇게 받은 명함이 수백 장이다. 가끔 명합집을 펼쳐본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이들, 이 사람은 누굴까? 당최 기억나지 않는 이, 별안간 보고 싶어 안부를 묻게 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 보게 된 명함. 지방의 사진관에서 일했던 이의 명함인데 자신의 직업을 '사진작가'라고 박았다가 '작'자를 검은 볼펜으로 동그랗게 지워버렸다. 사진작가가 아닌 사진가. 동그란 볼펜 자국이 꼭 사고로 다쳐 빠졌다는 그의 앞니 하나 같다. 작(作) 자 하나 덜어냈을 뿐인데 그의 명함은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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