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1896년 에디슨 원통형 음반에 노래를 녹음했던 사람들의 신원이 확인됐다. 미 의회도서관이 보관해 온 이 음반의 실물 사진도 처음 공개됐다.
미국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가 1896년 7월 미국에서 녹음한 이 음반은 ‘아리랑’ ‘달아 달아’ ‘제비가’ ‘매화타령’ 등 우리 노래 11곡을 담고 있다. 한민족의 노래가 담긴 최초의 음반이다.
이 음반은 그러나 전문 소리꾼이 아니라고 추정되는 3명의 한국인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 음반은 국악애호가 정창관씨가 음원을 구해 2007년 국내에서 CD로 복원했으나, 미 의회도서관 자료의 영문 표기가 애매해서 노래를 부른 3명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신원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해방전후사 연구자인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1일 이들이 당시 워싱턴의 하워드대학에 다니던 유학생이며, 그 중 2명은 ‘광주부(경기 광주) 상림 출신’ 안정식(安禎植ㆍ당시 27세), ‘경성(서울) 서부차동 이용만의 장남’ 이희철(李喜轍ㆍ당시 26세)인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음원의 존재를 1998년 한국에 처음 알린 미국인 음악학자 로버트 프로바인 메릴랜드대 교수와 의문을 갖고 음반의 주인공들을 추적하다 두 사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재미사학자 방선주씨의 저서 <재미한인의 독립운동> , 개화기 미ㆍ일 유학생을 연구한 국내 학계의 논문, 1910년대 매일신보 등에서 안정식과 이희철에 관한 기록을 찾아냈다. 재미한인의>
미 의회도서관의 목록은 노래를 부른 3명의 이름을 ‘Jong Lik Ahu’, ‘Son. Rong’, ‘hechel-ye’ and ‘He-chel-ge’로 적고 있는데, 정창관씨는 2007년 이 음반을 CD로 복원하면서 일단 안종식, 양손, 이희철로 추정해 표기했다. 이 교수는 “3명의 이름 영문 표기와 방씨의 책 등 여러 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두 사람은 안정식과 이희철인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안정식과 이희철은 1895년 고종의 교육조칙에 따라 선발된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으로 갔다가 이듬해 미국으로 갔다. 안정식은 1896년 2월 말, 동료 유학생 5명과 함께 캐나다행 배를 탔다. 4월 밴쿠버에 도착한 이들은 당시 주미공사 서광범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가 하워드대학에 입학했다.
이들은 아관파천으로 개화파가 몰락하자 신변에 불안을 느끼고 미국 행을 택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이희철은 안정식보다 한 달 늦게 미국행 배에 올랐다. 하워드대학의 1896년 연차보고서는 “한 푼 없는 한국인 7명이 들어와 도움을 청해 직간접적으로 도왔다”는 설명과 함께 이들의 사진을 싣고 있다.
음반을 녹음한 3명의 이후 행적은 확인된 것이 없다. 이 교수는 “이들이 미국에 정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며 “1910년 7월 대한매일신보의 판권을 인수한 이승룡 밑에서 총무를 지낸 동명 인물이 안정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정창관씨는 “한국인 최초 음원의 주인공들이 일부나마 밝혀진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물 음반을 확보한다면 좋겠지만, 녹음자인 플레처가 미 의회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씨가 미 의회도서관에서 받아서 이번에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 음반은 소리를 녹음한 6개의 실린더(원통) 중 2개가 일부 파손된 상태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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