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하다. 경색국면의 남북관계는 북한 인민군 대변인 성명과 조평통 성명 이후 퇴로 없는 대결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북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서해상 경계선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급기야 북한은 미사일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이는 단순히 대남 압박용을 넘어 미국까지 겨냥하고 있다.
위험할 뿐인 북 '미사일 게임'
북한의 미사일 카드는 한반도 긴장 고조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위협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지만 장거리 미사일의 속성상 미국의 신경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강한 경고를 보냈고, 게이츠 국방장관은 요격 태세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그렇잖아도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미국이 아직 본격 협상을 시작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의 미사일 움직임은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양보를 얻어낸 경험을 갖고 있다. 금창리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북한은 1998년 대포동 1호를 발사했고, 결국 이듬해 미국의 식량 지원을 받고 의혹시설 방문을 허락함으로써 금창리 문제를 해결하고 미사일 발사 유예조치에 합의했다.
이어 2006년 7월에는 북ㆍ미간 최대 쟁점이었던 BDA 은행 자금 문제로 갈등을 계속하다가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로 미국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 핵실험까지 강행, 결국 부시 행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이런 경험이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미사일 발사 게임을 되풀이하려는 충동을 부채질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미사일 발사는 북한에 결코 이롭지 않다. 막 취임한 오바마 행정부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지난 몇 차례 게임에서 이익을 얻은 것에 눈이 멀어 실제 발사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북에게 치명적이다. 북ㆍ미 협상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6자 회담마저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와 외교적 협상을 강조하는 오바마 행정부에게 북이 서둘러 미사일 카드를 쓴다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협상의지와 문제해결 노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선의를 가지고 북을 대하려던 협상파들도 대북 경계심과 강경론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된다. 남북 관계 악화에 더해 북ㆍ미 관계까지 경색되는 것은 북이 미사일을 통해 얻으려는 미국과의 통 큰 협상을 오히려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히려 북한과 미국은 다가오는 2ㆍ13 합의 2주년을 맞아 당시 합의 도출에 성공한 교훈에 눈을 돌려야 한다. 2007년 2.13 합의는 오랫동안 교착되었던 6자 회담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북핵 문제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핵실험과 유엔의 대북 제재로 맞섰던 북한과 미국이 본격적인 양자 협상을 통해 주고받기 식 쟁점 타결에 나선 것이 2ㆍ.13 합의의 바탕이다. 북ㆍ미 베를린 회담에서 쟁점의 대부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상호 타협에 이를 수 있었다. 양자 협상이 힘을 발휘했고 쟁점을 서로 연계시켜 합의 이행을 강제한 것이 주효했다.
분명한 협상의지 보여야
지금 협상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 역시 진지한 협상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보여야 한다. 말을 앞세울 게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양자 협상을 서둘러 시작해야 한다. 클린턴 국무장관도 6자 회담보다는 양자 협상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라는 무모한 벼랑 끝 전술보다는 확고한 협상의지를 보여야 한다. 출발도 못한 채 북ㆍ미 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ㆍ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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