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냄새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주저없이 '쑥'이라 하겠다. 쑥의 효능이 널리 알려진 요즘에는 '쑥 한증막'이나 '한방 쑥탕'등의 이름을 내건 집 앞 목욕탕만 가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쑥은 봄에 뜯은 날것이 제 맛이다.
뜯은 지 얼마 안 된 날 쑥을 한 움큼 쥐고 그 향기를 들이마시면,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쑥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오래 영향을 미쳐왔는가는 단군신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웅녀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 쑥과 마늘은 이미 반 만 년 전부터 약으로 밥으로 우리와 함께 했다.
■ 남도에서 맡은 쑥 향기
거창하게 단군신화를 예로 들 필요도 없이 나는 그냥 쑥을 좋아한다. 쑥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모습만 봐도 '와, 봄이구나.'를 느끼기 때문에 매년 이맘 때 내가 쓰는 칼럼에는 쑥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사실 이번 주 칼럼에 쑥을 다루는 것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삼짇날, 단오 날 근방이나 되어야 쑥떡을 해 먹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지금은 조금 이르다. 하지만 나는 예년보다 일찍 쑥을 만났다. 그것도 목포에서.
일 보러 급히 내려간 목포에서 취재를 마치고, 차 시간까지 여유가 생겨 목포항 쪽으로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풋풋한 향기가 살랑거리고 있어서 코만 믿고 좇아 보았더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쑥을 다듬고 계신 아주머님 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2월에 쑥을 보고 군침을 뚝뚝 흘리고 서 있던 나. 갑자기 봄을 몰고 온 듯 쑥이 반가워, 쑥을 처음 본 사람처럼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조금만 파실 수 있는지 여쭈어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 쑥을 다 어디서 캐셨어요?" 여쭈며 슬쩍 운을 띄워보았다. 남도의 섬들에서 캐낸 쑥이라 답하시는 아주머님들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섬에서 나는 쑥이 영양도 좋단다. 옛날 약이 없던 시절에는 쑥을 지혈제로 이용했을 만큼 민간요법에 두루 쓰였던 쑥. 아주머님들이 다듬고 있는 쑥을 보자니 한 가득 집어 봉지에 넣어 서울까지 가져가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살짝 쪄서 냉동해 두면 쑥 생각날 때마다 튀겨먹고, 밥 할 때 넣어 먹고, 감기 기운 들 때마다 요긴하게 약으로 먹을 텐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아주머님들은 정말 싼 값에 쑥을 넘치도록 많이 주셨다. 쑥떡 좋아하는 친정엄마랑 오랜만에 방앗간이나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흥이 겨웠다.
■ 쑥버무리, 쑥국
친정 엄마는 쑥떡을 좋아한다. 어려서 아직 쑥 맛을 몰랐던 시절부터 엄마는 봄마다 쑥떡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오래 먹어 이제는 내가 먼저 쑥을 찾는다. 게다가 시어머님까지 쑥을 좋아하시어 나는 종종 쑥만 뜯었다 하면 뽀르륵 전화를 걸기도 한다. "어머님, 저 쑥 뜯었는데 뭐 해 먹으면 좋을까요?"라고.
이번에는 목포에서 가져온 쑥을 대충 다듬어서 쌀가루와 버무려 면보 하나 깔고 찜통에 올려 쑥버무리를 만들어 봤다. 정말 간단하게 쫄깃한 맛이 만들어졌다. "소금 약간 넣고, 설탕도 넣어야 하는 거 잊지 마라." 요리법을 알려주신 시어머님 말씀에 따라 간도 딱 맞게 만들고.
쑥버무리는 하루가 바쁠 때, 간단한 식사거리로도 좋다. 쌀가루만 있으면 비교적 간단하게 푸짐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어서 "쑥버무리 쪘으니 우리 집에 놀러와."라고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좋다.
요즘은 집 밖에서 커피 한 잔, 과자 한 조각만 먹어도 둘이서 훌쩍 만 원 가까이 드니까 누군가와 티타임을 함께 나누기조차 부담스럽다. 이럴 때 쑥 버무리 한 냄비 쪄내면 보리차만 곁들여도 수다 떨며 나눠 먹기 좋다.
쑥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뭐 더 있을까. 나는 '애탕국'이라 하여 쑥을 다져서 고기랑 섞어 빚은 완자를 넣어 끓인 국이 좋다. 아니면 된장을 엷게 풀어서 간단히 끓여 낸 쑥국도 향긋하다. 날콩가루를 더해서 끓이는 방법도 있는데, 걸쭉한 맛을 좋아한다면 시도해 봄직 하다.
매일 먹는 반찬에 새로 뜯은 쑥으로 끓인 국만 하나 더해도 때 이르게 봄이 찾아온 듯 마음이 새로워진다. 이 밖에 쑥에 소주를 부어 만드는 쑥주나 쑥을 설탕에 오래 재워 만드는 쑥 진액, 쑥에 물을 붓고 달여 만드는 쑥차 등도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 몸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주는 역할을 하겠다.
쑥이랑 두부, 다진 고기 약간으로 속을 채워 만든 쑥 만두는 나만의 레시피. 알사탕 만하게 잘게 빚어 물만두 형태로 익혀내면 쑥 냄새가 정말 강하게 퍼진다. 파랗게 쑥 천지로 잘 지은 쑥밥에 부침가루와 쑥을 한 움큼 섞어 대충 부친 부침개, 쑥국에다가 만두까지 빚어 초간장을 곁들이면 단박에 밥상 가득 봄이 넘친다.
단, 따뜻한 기운의 식품인 쑥은 몸이 찬 사람들에게는 좋지만, 몸에 열이 많은 사람들은 조심해 가면서 먹는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하니 알아두면 좋겠다. 입춘도 지났건만 아직 몸이 으슬으슬하다면, 겨우내 체력을 빼앗긴 허약한 도시인이라면 쑥 한 줌으로 봄맞이를 해보자.
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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