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경남 창녕군 화왕산 대보름 억새태우기 축제 행사장은 1분여만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50여m가 넘는 불기둥이 방화선을 넘어 관광객들을 덮치면서 비명이 쏟아지는 등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산 정상인 배바위 남쪽에서 불길을 목격한 안진우(35ㆍ부산 남구 대연동)씨는 “행사 시작을 알리는 불꽃과 함께 주최측에서 억새에 불을 붙이자마자 돌풍이 불어닥치면서 불꽃쇼를 연상케 하는 불길이 인파를 덮쳤다”고 말했다.
친구 20여명과 함께 왔다가 가까스로 화를 면한 김철호(53ㆍ경남 거창군 거창읍)씨는 “산 정상 부근에 차려진 본부석 뒤편 산봉우리에서 불기둥이 치솟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순간 불길이 관람객들을 에워싸 미처 피할 사이도 없었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해사진연구회 회원 33명과 산 정상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 오른손 화상을 입은 이윤기(65)씨는 “바위에서 사진촬영을 하는 일행을 향해 불길이 덮쳤다. 일행 9명이 화상을 입고 1명이 실종됐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사망ㆍ실종자들은 대부분 불길이 방화선을 건너오자 배바위로 대피했다가 화염이 거세지자 인근 관룡산 방면으로 피하려다 높이 30m 가량의 절벽까지 내몰리자 아래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나자 주최측에서 이 사실을 알리고 등산객들의 대피를 유도했으나, 불길이 거세지면서 행사에 참석한 1만5,000여명의 관광객들이 당황해 큰 혼란이 빚어졌다. 등산객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연기가 자욱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방화선을 따라 난 좁은 등산로를 이용해 작은 손전등이나 앞 사람의 인기척에 의지해 간신히 이동했다.
김모(40ㆍ여)씨는 “안전요원들이 곳곳에 물통을 들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했지만 큰 불이 순식간에 번지자 화염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박모(40)씨는 “주최측에서 행사에 대비해 예초기로 사전에 방화선을 설치는 등 불이 번질 것에 대비한 것 같았지만 일부 구간의 방화선 폭은 5~10m에 불과했고 지푸라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등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고 주최측의 준비 소홀을 탓했다.
창녕군 관계자는 “필수 행사요원 이외에 500여명의 직원들을 산 일원에 배치하는 등 안전조치를 만전을 다했지만 예상치 못한 돌풍으로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산 정상에는 행정 48명, 소방 20명, 경찰관 46명 등 114명 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행사규모에 비해 안전요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화왕산 억새태우기
화왕산(火旺山) 억새태우기는 산 이름이 ‘큰불뫼’에서 온 것처럼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어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속설에 따라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 행사의 일환으로 3년마다 열리고 있다. 대형 달집에 불을 지피면 둘레 2.7㎞의 화왕산성(사적 64호) 내 18만5,000㎡의 마른 억새 밭이 순식간에 불바다의 장관을 이룬다. 풍년농사와 안녕을 기원하는 상원제(上元祭)를 지낸 뒤 보름달이 뜨는 시각에 맞춰 천지가 진동하는 북 울림과 함께 대형 달집에 불길을 지피게 된다.
창녕=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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