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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농성… 애끓던 6년 끝에…푸른 작업복 다시 입고 '감격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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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농성… 애끓던 6년 끝에…푸른 작업복 다시 입고 '감격 출근'

입력
2009.02.11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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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족으로 반겨줘 고맙습니다. 6년 만에 일터에 돌아오니 솔직히 얼떨떨합니다. 정규직이 된 만큼 더 열심히 일할 겁니다."

9일 오전 울산 동구 방어동 현대미포조선 한우리회관 교육장. 출근 통보서를 손에 쥔 현대미포조선의 옛 사내 하청업체 용인기업 해직자들이 '정규직'으로서 일터에 첫 발을 디뎠다. 살짝 움츠린 어깨에서 새 출발의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낯빛만은 밝았다.

울산지역 노조간부 2명이 100m 높이의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에서 31일간 벌인 고공농성의 단초가 됐던 용인기업 해직자들이 우여곡절끝에 옛 일터에 다시 안착했다.

2003년 해직된 30명 가운데 정년(58세)을 넘어선 2명을 제외한 28명은 이날 과거 재직 시절 입었던 청록색 현대미포조선 작업복을 다시 입고 출근했다. 과거 알고 지내던 직영(정규직) 근로자들이 여럿 나와 "반갑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죠" "언제 소주 한 잔 하시죠"라며 반겼다. 이들이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일부 복직자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복직자들은 근로계약서 작성 등 입사 절차를 밟은 뒤 노조 관계자로부터 환영 인사와 함께 노조활동에 관한 안내를 받았다. 이어 인근 기술훈련원에 들러 앞으로 배울 새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근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는 등 빠듯한 하루를 보냈다. 대부분 40대 중반을 넘긴 이들은 꿈에 그리던 정규직 일자리를 마련했다는 안도감에 밝은 표정이었다.

용인기업 시절 이들이 맡았던 선박 수리 작업은 모두 해외로 옮긴 상태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 길게는 6개월간 사내 훈련원에서 용접 등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술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6년간 복직투쟁을 이끌어온 전 금속노조 용인기업지회장 권오균(52)씨는 "해직기간의 임금보상 문제 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회사 측과 성실히 협의할 생각이며 일단 업무교육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지난 6년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 2003년 1월 31일 원청업체인 미포조선이 선박 수리에서 건조로 업종을 변경, 일감이 없어진 용인기업이 폐업하면서 그는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형편으로 전락, 회사에서 지원을 받던 자녀 학자금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당시 대학 2학년이던 큰 아들(25)은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고, 고교 2학년이던 막내(23)도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권씨는 실직 이후 막노동판, 잡용직,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아내(48)도 식당에서 그릇을 닦았다. 생활의 절반은 복직투쟁, 절반은 생존을 위해 썼다. 그는 "못난 애비 탓에 대학을 나오지 못한 두 아들이 일용직으로 전전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들이 강제로 벗겨진 청록색 작업복을 다시 입게 되기까지 험로의 연속이었다.

해직자들은 바로 복직투쟁위원회를 꾸려 거리선전전과 천막농성 등을 벌였고, 원청사인 미포조선을 상대로 종업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에서 패소해 오랜 복직 투쟁이 물거품이 되는가 했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과 용인기업 직원들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됐다고 보인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해직 근로자들과 지역 노동계는 즉각 복직을 요구하며 쟁점화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근로자 이모(38)씨가 4층 사무실에서 투신, 중상을 입었으며, 지역 노조 간부 2명의 굴뚝농성으로까지 이어져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모두 새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아 하루 빨리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면서 "임금보상 문제는 현재 법원의 조정명령에 따른 협상이 진행중인 만큼 합리적 방안을 찾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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