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지음/지성사 발행ㆍ224쪽ㆍ1만3,000원
'땅바닥에 쩍쩍 실금이 갈라진다. 두런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여기저기를 살핀다… 푸르뎅뎅하면서도 누르스름한 순이 수군거리며 배시시 고개를 치켜들고 밖을 내다본다! 처음 보는 신기한 세상! 어느새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어여차, 영차!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잇달아 머리를 들이밀고 숨 쉴 겨를도 없이 치민다.'(36쪽)
특유의 재치와 입담이 녹아있는 글을 통해 생물과 생태계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소개해온 생물학자인 저자가 4년여 만에 펴낸 새 책이다. 저자는 2005년 강원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뒤 춘천에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 밭농사 경험을 토대로 이번엔 흙과 흙에서 사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과학에세이로 담아냈다.
켜켜이 묻은 세속의 먼지를 털고 자연으로 돌아간 노학자에게 흙은 단순한 과학적 연구의 대상을 넘어선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는 '썩힘(부패)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고, 우주의 섭리를 가득 안은 '씨알의 자궁'이다. 이런 인식에서, 씨앗이 발아하는 순간도 기운차고 생동감 넘치는 시적인 산문으로 묘사된다.
흙의 탄생에서부터 흙과 물, 흙과 식물 등의 주제별로 흙 자체에 대한 지식과 생각을 전한 후, 저자는 2부에서 흙에 사는 생물들을 소개한다. 수수께끼 두더지, 땅딸막한 땅강아지, 똥 굴리는 소똥구리, 톡톡 튀는 똑토기 등 생태에 따라 명명된 토양생물들의 이름이 정겹다.
하지만 흙이 우주의 어머니이듯, 흙 속에 사는 벌레 한 마리의 생태조차도 저자에게는 인생과 우주의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 달팽이의 생태를 정리한 책의 마지막 절을 저자는 이렇게 맺는다. '달팽이를 닮아 보리라!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 근면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나니. 유수불식(流水不息)이라, 어디 흐르는 물이 쉬던가.'
올해가 칠순인 저자는 텃밭을 '수도장(修道場)'이라고 부른다. "운력으로 팔다리가 튼실해지니 몸에 좋고, 영혼이 씻겨 잡념이 사라져버리니 정신건강 관리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며 "나이가 들어서인지 흙에서 만나는 생물들의 존재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도 말했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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