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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종자돈' 벼랑 끝의 SOS/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빈민은행'에 발길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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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종자돈' 벼랑 끝의 SOS/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빈민은행'에 발길 몰린다

입력
2009.02.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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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꽃집을 차릴 수 있게 꼭 도와주세요."

6일 오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액 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인 '신나는 조합' 직원을 만난 최종영(46)씨의 목소리는 나직하고도 간곡했다. 지난달 창업자금 2,000만원을 신청한 최씨는 서류심사를 통과, 이날 그가 인수하려는 서울 용산구의 꽃가게에서 현장 실사를 받았다.

큰길에서 떨어진, 2평쯤 되는 초라한 매장이지만 최씨는 "고급화와 주문 생산 위주로 운영하면 승산이 있다"며 거듭 힘주어 말했다.

지방에 살던 최씨는 9년 전 이혼하고 무일푼 상경했다. 월셋집을 전전하며 꽃꽂이와 실내조경 기술을 익혀 번 돈으로 최근까지 전 부인의 빚을 대신 갚았다. 남은 거라곤 월세 보증금과, 플로리스트로 취업이 힘든 중년의 나이뿐. 가게를 차리고 싶었지만 은행 대출은 꿈도 꿀 수 없고, 주변에 신세지긴 싫었다.

그런 그에게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한줄기 빛이었다. 최씨는 "반드시 재기해 떨어져 사는 두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생계 기반이 없는 모자 가정에 꽃꽂이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다고도 했다.

휴면예금으로 조성된 소액서민금융재단의 기금 3억원으로 실시하는 신나는 조합의 올해 첫 저소득층 창업 지원 사업엔 최씨를 비롯, 230여명이 서류를 냈다. 50명 안팎이던 평소 지원자 수의 4배를 넘는 인원이다.

이중 18명이 현장 실사 대상에 올랐다. 최종 면접을 통과해 최고 5,0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될 사람은 10명 이내. 조한 기획팀장은 "갑자기 늘어난 서류를 보며 경기 한파를 실감했다"며 "지원자의 30% 가량은 신용불량자였고, 직원들을 울리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월급 150만원의 일용직 택배기사로 일하며 키르키즈스탄 출신 부인과 세 아이, 시력을 잃은 장모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의 성실함을 높게 산 회사 측에서 영업소를 내주겠다고 했지만 올해 초 파산면책을 받은 터라 보증금 1,000만 원을 구할 곳이 없다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었다.

40대 노숙인이 조합 사무실을 직접 방문한 일도 있었다. 고아 출신으로 평생 변변한 직장 없이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온 그는 최근 생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모친을 살해해 수감돼 있었다.

노숙인은 "4년 뒤 출소할 어머니를 모시려면 돈을 벌어놔야 한다"며 과일 행상용 손수레를 살 300만 원을 신청했다. 그를 맞았던 직원은 "주거지 불명 등의 이유로 지원 대상엔 못 올랐지만, 자활 의지가 솟구치던 그의 눈이 자꾸 생각난다"고 말했다.

자영업 폐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빈곤층 창업은 남은 생계기반마저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윤주일 팀장은 "탈락시키는 것이 미안할 만큼 절박한 분들이 많지만, 창업 이후를 생각하면 대출 심사를 엄격히 할 수밖에 없다"며 "각계 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 사전 교육과 사후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신나는 조합의 대출금 상환율은 94%에 이른다. 또 다른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은 설립 후 5년간 지원한 업체 중 88.2%가 생존하는 성과를 거뒀다.

오후엔 미용업 지원자에 대한 현장 실사가 있었다. 25년째 미용업계에 종사 중인 유영수 포도커뮤니케이션 상무가 전문위원으로 동행했다.

의정부에서 5평짜리 미용실을 내고 싶어하는 김모(43)씨에게 지난 2년은 악몽이었다. 농장을 운영하다가 수억원대의 손해를 본 남편은 2007년 초 첫 아이를 임신한 김씨와의 아침 식사 자리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남편 병원비와 아기 양육비를 대느라 10년 간 경영하던 미용실을 팔고 월셋집으로 옮겼다. 그래도 모자라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이모(54)씨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사업 부도 후 건축 기술자로 일하던 남편은 몇 년 전 톱날에 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남편의 몫까지 벌려고 3년 전 미용실을 인수했지만, 불황에 수입은 반토막 났고 치르지 못한 보증금과 권리금 600만원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가장 대신 생계를 책임진 어려운 현실도 삶에 대한 이들의 의욕을 꺾진 못했다. "남편도 많이 회복됐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맡길 만큼 컸으니 이젠 집안 살림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씨의 표정엔 그늘 한 점 없었다. 그녀가 시원스레 내놓은 상권분석과 영업전략엔 25년 전문가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는 50대 중반에도 새로운 미용 기술을 익히는 데 적극적이었다. '아이롱 퍼머' 등 가게 벽에 붙은 장식체 글씨도 이씨가 인터넷에서 공부해 직접 쓴 것이다. 그녀는 대출금이 나온摸?내부 인테리어를 혁신해 고객을 늘릴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대출 심사라기보단 삶에 대한 건강한 의지와 신뢰를 확인하는 기분 좋은 자리였다. 실사를 마칠 무렵 이씨가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고민은 가족들한테도 털어놓기 힘들잖아요.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금융 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소액자금을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하는 활동. 금융거래뿐 아니라 지원 대상자들이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까지 포함한다. 신나는 조합의 경우 연리 2~4%, 1,000만~2,000만원 대출이 주를 이룬다. 국내에선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세상기금, 하나희망재단, 창원 사회복지은행 등이 활동 중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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