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불황이 좋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들은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630만명이 <쉬리> 를 봐 한국영화 흥행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 이미 50만 명이 불법비디오로 봤기 때문에, 더 볼 사람이 없다던 일본영화 <러브레터> 도 그 해 서울에서만 60만명을 동원했다. 이듬해에는 <공동경비구역 jsa> 가 또 한번의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20%대를 맴돌던 한국영화 시장점유율도 1999년에는 39.7%로 뛰었고, 총관객도 454만명이나 더 늘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불황' 덕은 아니었지만. 공동경비구역> 러브레터> 쉬리>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불황에 강한 것은 아니다. 불황에 먹히는 영화가 따로 있다. 웃기는 영화보다는 울리는 영화, 지금의 고단한 현실을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는 영화를 관객들은 좋아한다. 지금의 내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 사는 게 즐겁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을 때야 코미디도 보고, 화려한 액션도 보고,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판타지나 SF물도 본다. 그러나 삶이 팍팍하고 암담한데 무슨 기분으로. 바로 불황시대의 관객 심리다. 거창한 정의나 지구평화보다는 주변의 작은 것들, 지극히 뻔한 감정과 가치관들이 소중하다.
▦세계에서 최다 영화제작국,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최고의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인도다. 1년에 1,200여편의 인도 특유의 상업영화인 소위 '볼리우드(Bollywood)'가 제작되고 국내시장 점유율도 97%에 이른다. 인도인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일당의 절반이 넘는 입장료를 내고 볼리우드를 본다. 1970년대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신상> 처럼 볼리우드는 상영시간이 대개 3시간 정도로 춤과 노래와 웃음으로 시작해 삶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마지막 희망으로 끝난다. 볼리우드는 인도인들의 '카타르시스'다. 신상>
▦<과속 스캔들> 에 이어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가 화제다. 지금은 돈으로 치장한 에로비디오 같은 <쌍화점> 보다는 철 없는 아비의 자식사랑을 소박한 웃음과 감동으로 엮어낸 <과속 스캔들> 이 더 좋다는 얘기다. 경북 봉화 산골에서 찍은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그 작품에서 평생 자기 고집대로 우직하고 느리게 농사를 짓고 있는 여든 된 최원균 할아버지에서는 물론 그와 40년을 함께 죽도록 일만 한 늙은 소에서도 '나의 아버지'를 본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큰 고통을 말없이 삼키며 살아간 아버지를. 그래서 모두 운다. 워낭소리> 과속> 쌍화점> 워낭소리> 과속>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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