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ㆍ박수현 옮김 /아르테 발행ㆍ222쪽ㆍ1만원
미겔 데 우나무노(1864~1936ㆍ사진). 그는 스페인 문학사에서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퇴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완전히 몰락해버린 스페인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과 정신적 근대화의 문제와 싸워온 '1898년 세대'의 대표작가로 꼽힌다.
1920년 출간된 <모범소설> 은 우나무노가 평생 씨름해온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과 같은 소설이다.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 (1613)에 대한 일종의 헌사 격인 작품으로, 자신의 소설이론을 6개 장으로 요약한 특별한 '서문'부터 주목을 끈다. "나는 내 소설, 내가 창조한 번뇌하는 인물을 내 영혼, 내 내면에서 끄집어냈다"는 서문의 발언처럼 그의 작품은 인상적인 인물의 창조, 고뇌에 찬 인물들의 심리묘사 등으로 독자에게 강력한 여운을 던져준다. 통상 반(反)이성주의 철학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언어로 담아냈다는 그의 여타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 모범소설> 모범소설>
3편의 수록작 중 '더도 덜도 아닌 딱 남자'를 대표작으로 볼 만하다. 이 작품은 마을의 최고 미녀 훌리아와 최고 갑부 알레산드로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다. 작가는 인물의 외양에 대한 묘사는 거의 생략한 채 그들의 고뇌와 욕망을 형상화하는 데 진력한다. 알레산드로와 결혼했지만 훌리아는 그 결혼은 남편이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고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녀는 "세상엔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자신을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남자들이 있지요. 그들은 자신에게 굴복한 가엾은 여자들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을 착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편을 비난하고, 순정을 내세워 접근하는 가난한 백작의 유혹에 넘어간다.
아내의 애정 행각을 눈치챈 알레산드로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유폐시키고 자신의 '사랑'을 재차 확인하려는 아내의 요구에 "사랑하느니 안 하느니, 사랑 운운하는 모든 헛소리들은 백작 집에서 차를 마실 때나 지껄이는 쓸데없는 얘기"라고 면박을 준다.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자신의 외도는 정당화한다. 그렇게 속물과 마초가 결합된 '나쁜 남자'의 전형처럼 묘사되는 알레산드로가 급작스런 아내의 죽음 앞에서 자살로 자신의 순정을 증명한다는 이 소설의 파국은 다소 느닷없이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두 인물의 심리적 격돌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려 한 작가적 고뇌의 산물로도 읽을 수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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