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는 냉면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다. 1,000만원을 영화감독 지망생인 아들을 위해 투자했다. 배우와 스태프도 알음알음으로 해결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만난 한 동료가 조감독과 조연을 겸했고, 그 동료의 남편이 주요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몇몇 스태프도 단역을 겸했다. 그나마 주연은 전문 연극배우가 맡았다지만 출연료는 용돈 수준이었다. 그래도 제작비 중 10분의 1이 출연료로 들어갔다.
5일 개봉한 독립영화 '낮술'의 촬영 과정은 돈과의 싸움이었다. '단돈' 1,000만원으로 상영시간 115분에 달하는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줄일 건 줄이고, 뺄 건 빼야 했다.
조명 장치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고, 밤 촬영도 최대한 자제했다. 강원 정선군의 한 펜션을 빌려 촬영도 하고 숙식도 해결했다. 스태프와 배우가 식사를 한다는 조건으로 횟집과 음식점을 촬영장소로 빌리기도 했다.
악조건 속에서 만든 영화이다 보니 외관은 당연하게도 보잘 것 없다. 실내 장면과 밤 장면에서 화면은 여지없이 문드러지고, 빗나간 초점은 촬영 당시의 조급증과 어설픈 기술력을 증언한다.
하지만 14일간 치른 돈과의 전투에서 노영석(33) 감독은 결국 승리했다. 2007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낮술'은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를 거쳐 스위스 로카르노, 캐나다 토론토, 그리스 테살로니까, 스웨덴 스톡홀름, 에스토니아 탈린, 프랑스 브졸 영화제 등에 초청되는 개가를 올렸다.
전주영화제에서는 JJ Star상과 관객평론가상을, 로카르노영화제에서는 넷팩상을 받았다. 홍콩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덴마크 코펜하겐, 미국 위신콘신 영화제도 방문할 예정이고 상반기 중 미국 개봉까지 확정됐으니 가히 세계를 취하게 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돈 들이면 독립영화라 말할 수 있겠나 생각했다. 1,000만원으로도 충분히 영화 제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막상 해보니 화질이 좋지 않아 참 난감했다. 영화제를 거쳐 개봉까지 하게 될 줄은 나도 스태프도 배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낮술'의 알코올 도수를 높인 것은 잘 짜여진 이야기와 우직한 연출의 힘이었다. 술김에 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약속했다가 홀로 길을 떠나게 된 남자 주인공 혁진(송삼동)이 낮술과 여자를 통해 겪는 우여곡절은 엔딩크레딧이 오르기 전까지 내내 웃음의 취기를 더한다.
유혹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결국 넘어가기 일쑤고, 여자와 사랑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지닌 수컷들의 비루한 욕망은 '낮술'의 훌륭한 안주감으로 전락한다.
노 감독은 어려서부터 음악과 영화를 꿈꿔왔다. "음악으로 돈을 벌어 서른이 넘으면 영화를 만들겠다는 아주 터무니없는 꿈을 고등학교 때부터 꿔왔다"고 했다.
2003년 서울대 공예과를 졸업한 뒤 '가내수공업' 형식으로 힙합 음반을 만들었으나 어느 음반기획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무능력을 통탄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접었고, 영화에 매진했다."
영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시나리오 공모전마다 눈물을 삼켜야 했다. 어머니의 냉면가게에서 육수를 뽑아 용돈벌이를 하며 기회를 노렸다. "'내가 부족한 것이 많구나'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일까 하라는 생각에 초조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영화를 한 번 찍어보자, 찍으면 되겠지'라며 마음을 다잡았고 '낮술'을 만들었다."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 경험하지 못했던 노 감독은 '낮술' 덕분에 로카르노와 토론토, 테살로니까까지 다녀오는 호강을 누렸다. 영화제측이 제공한 비행기삯과 숙박비만 감안해도 제작비 1,000만원은 거의 다 회수한 셈이다.
게다가 전주영화제에선 상금 1,200만원까지 받았고,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는 4,000만원의 개봉 지원비를 받았다. 그래서 흥행에 대해선 부담이 크지 않다. "만일 수익이 난다면 어머니에게 투자비를 우선 돌려드리고 싶다.
고생한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술도 얼마든지 사고 싶다. 배우들이 이번을 계기로 다른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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