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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내 마음의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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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내 마음의 '워낭소리'

입력
2009.02.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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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와 동생은 대관령 아래 산골에 살았다. 어른이 되어 둘 다 서울에 왔지만, 어릴 때 쓰던 강원도의 고향 말이 좋아 둘 다 '강원도 사투리' 카페에 가입해 그곳에서 지난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많다. 아래 대화도 그 중의 하나다.

산골 고향의 아련한 추억

나: 바쁠 땔수록 쉬어가랬다고, 오늘 오후에 집사람하고 같이 '워낭소리' 영화르 보러가기로 했사. 그거 보면 어릴 때 우리집에서 키우던 소 생각이 마이 날 텐데. 사람도 영혼이 있듯 소도 영혼이 있었으면 참 좋겠사. 그래믄 그 친구하고 할 얘기가 참 많을 것 같은데. 아마 우리 4형제 모두 그 친구르 기억할 텐데.

동생: 형이 쓴 글으 보니 어렸을 적에 우리집 암소가 생각나능기. 조금 까무잡잡하고 참 점잖고, 말도 잘 듣고 일도 잘하던, 아마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소랬는데, 나하고 친한 친구랬는데, 논에 일하러 갈 때 초등학교도 안죽 안 들어간 내가 끌고 갔는데, 이른봄부터 논 갈아엎는 쟁기질, 모 심을 때 써래질, 밭갈 때 쟁기질도 참 잘하고, 말도 잘 알아듣고, 소 먹이러 늘상 같이 다녔는데. 동네서도 아주 이름난 소였는데, 초등학교 때 집에 돈이 아수워서 오꼴집에 팔았잖소.

나: 그 소르 오꼴집에 직접 판 게 아니고, 소장사한테 팔았는데 오꼴집에서 그 소가 일으 잘한다고 그 소보다 큰 자기집 소르 내놓고 우리소르 가지고 갔사. 그래서 니하고 내가 길에서 그 소르 보고 둘이 같이 냇둑 건너에 있는 칠게이(칡) 잎사구르 따주고 그랬던 적이 있사. 그 소가 우리 형제한테는 또 다른 형제나 마찬가지였는데.

동생: 학교 갔다 오다가 일부러 오꼴집 외양간 기웃거리기도 하고, 한 번은 냇가에 매놓은 걸 보고 산에 가서 칡겡이 잎사구르 한 아름 따 주고요. 그 후로도 가끔 하교길에 칠게이 잎으 따주곤 했는데 그때 소가 나르 알아 보더라구요. 옛 주인이라고 을매나 반가워하는지, 지금 얘기를 하다 보니 모든 게 다 아련하게 기억나잖소.

나: 내가 예전에 '말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썼지만, 오늘 니하고 이래 얘기하다 보니, 그때 우리집 소 얘기르 한번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소 얘기르 우리 동생 어릴 적 얘기와 함께 해야겠다. 동화르 써도 참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안죽 학교도 안 간 니가 그 소르 몰고 댕기던 모습도 눈에 어리고.

동생: 그 소는 생일이 겨울이었는데, 생일도 ?輧楮? 소 생일날에는 여물에 콩으 마이 넣어서 죽으 쒀줬고, 구영(구유)에 등겨도 마이 퍼 주고요. 가족 같았는데, 어릴 적에 집에서 키우던 짐승이어도 상그도(아직도) 소 얼굴 모습이 그려지잖소. 내가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소야.

나: 이제 보니 동상이 나보다 그 소에 대해 기억하는 기 더 많다야. 예전에 암소들은 집에서 낳은 송아지르 키워서 어른소 만들고, 농사일 가르치고, 또 새끼 낳게 하고, 그래서 그 소는 겨울에 생일까지 있던 소였는데, 내가 이 소 얘기르 꼭 한번 써야겠다. 그래야 그 친구가 살아서 우리집에 베푼 은공과 수고를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 강원도 사투리 카페 사람들이 함께 댓글을 달았다.

말 못하는 소의 가르침

고향친구: 두 형제가 나누는 이야기만 들어두 내 가심이 울컥해지잖소.

고향후배2: 다들 영화 꼭 보세요. 그 소가 사람처럼 눈물도 흘리구, 마지막에 생을 마칠 때는 지 가슴도 아주 찡하더라구요.

고향후배1: 그 영화가 독립영화로 관람객 10만을 넘겼다고 하던데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정서와 감성은 다 그렇게 비슷한가 봐요. 다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착하고 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무서운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텐데.

그래. 말 못하는 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도 이렇게 크고 많다. 그것은 일부러 지어 꾸민 영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소의 것도 사람의 것도 이토록 숭고한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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