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예 지음
인물과사상사 발행ㆍ464쪽ㆍ2만5,000원
“근대는 예술을 사회 한가운데로 불러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위정자들의 말에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고, 종교의 가르침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72쪽)
계몽, 혁명, 이성. 서구의 근대를 관통하는 상징적 개념들이다. 예술은 한 발 비켜서 있었던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맨 앞에 예술의 존재를 놓는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성립된 ‘아름다움의 제국’으로서 근대 서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엔 선사시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부터 20세기 신디 셔면의 작품까지 다양한 예술품이 등장한다. 그리고 칸트와 괴테, 벤야민, 아도르노가 호출된다. 독일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예술 작품과 형이상학적 사변을 각각 씨줄과 날줄 삼아, 서구의 근대라는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엮는다.
이 책은 서양사의 흐름도, 미술사의 흐름도 따르지 않는다. 칸트 미학과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가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기 위해 나란히 거론되다가, 오디세우스의 전설이 다뤄지고, 이어 근대인의 운명 개념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이런 널뛰기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계속된다. 읽어내는 데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이다.
이 독특하고 분방한 태피스트리는 지나간 시간을 기록한 풍경화만은 아니다. 예술이 근대화의 도구, 근대 인민의 심리적 안식처였다는 저자의 논지가 타당하다면 의문은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변해 남는다. “근대인의 운명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21세기 자본주의 제국 인민들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적 미학을 전공한 저자는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등을 썼고 <여성론> <케테 콜비츠> 등을 번역했다. 저자는 서언에 이렇게 썼다. “예술은 고독과 고통을 객관화함으로써 개인의 병을 치유한다… 어떤 작품이든, 하나의 작품을 앞에 두고, 혹은 이야기의 한 구석을 읽다가 ‘예술이란 이래서 자기배반이구나!’ 하고 무릎을 친다면, 글쓴이로서 흐뭇하겠다.” 케테> 여성론> 아도르노와>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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