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미노 쇼' 인생은 너무 허망… 현재의 작은 행복을 즐겨라
새해를 맞을 때마다 TV영상을 통해 한 번쯤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수만 개의 도미노 조각들이 순서대로 쓰러져가다 새해 연도의 네 자리 숫자를 마지막에 멋지게 무너뜨리는 장면이다. 숨 가쁘게 끝나버리는 현란한 도미노 쇼는 수백 시간의 구상과 준비를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도미노 쇼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도미노 쇼의 클라이맥스와 같은 멋진 장면을 우리도 각자의 인생 속에 그려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현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살아간다. '멋진 장면'은 큰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고위관직에 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 상당수의 한국 부모들은 자식이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속에 그리는 장면을 위해 지금 놀고, 돈 쓰고, 자고 싶어도 공부하고, 아끼고, 일하도록 스스로를 채찍하고 훈련시킨다. 한 마디로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다. 분명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인데 행복의 관점에서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만 개의 도미노 조각을 쌓는 사람들은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그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만약 그 준비 과정이 한없이 짜증스러운데도 오직 그 절정의 순간만을 위해 수백 시간을 투자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매한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직 미래의 구체적인 성취를 위해 현재 삶의 대부분을 희생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프랑스 사상가 라로쉬푸코가 지적했듯이 인생의 어떠한 긍정적인 사건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현재 누릴 수 있는 10만큼의 행복을 희생해서 미래에 20만큼의 행복을 돌려 받게 된다면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라로쉬푸코의 지적대로 미래의 사건이 가져오는 실제 행복감이 우리 기대보다 항상 적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놀지 않고 일만 하여 얻은 성공 뒤의 행복감이 기대한 20이 아니라 5 밖에 되지 않는다면 행복의 기반을 미래에서 현재로 더 옮겨 놓아야 한다.
최근 심리학 연구들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왜 과장된 기대를 하는가를 설명해준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처음에는 시끄럽던 소음도 얼마 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는 변화에 금방 익숙해진다.
회사에서의 승진을 예로 든다면 우리는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의 짜릿함에 주목하지 그 짜릿한 즐거움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 빨리 적응 해버리는 인간의 속성을 간과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과장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 항상 어설프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가져오고, 나쁜 일은 뜻밖의 행운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라는 소설이 있다. 전갈에 쏘인 아들의 치료비를 걱정하던 키노라는 주인공은 어느 날 '달만큼 멋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키노 가족을 위협하자 키노 가족은 밤에 마을에서 도망친다. 추격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키노가 급히 총을 쏘는데, 그만 자기 아들이 맞고 쓰러진다. 행운이 이처럼 항상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단순한 상상과는 달리 좋은 일이 다른 나쁜 일과 뒤엉켜 상쇄되는 것이 현실이 펼쳐내는 미래의 모습이다.
물론 아무 계획도 꿈도 없이 순간의 쾌락에 묻혀 사는 것이 행복이란 뜻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균형 있게 인생을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한 방'에 보장하는 대단한 사건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은 미래에 시선을 두고 지나치게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고교 학창 시절은 오직 대학을 위해, 대학은 취업을 위해, 중년은 또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식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한 계획과 꿈들을 척척 이룬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의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그 속에서 행복을 음미하는 비결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조기유학 열기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행간에 담겨있는 기자의 의문은 왜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 졸업장 하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온 가족들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목전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먼 미래에서 찾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현재(present)라는 영어 단어가 '선물'이란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는 아마 그 속에 담겨 있는 행복의 양이 과거나 미래의 것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의 꽃은 바로 지금, 여기에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 팀 윌슨 교수 이메일 인터뷰
결혼하면 그 행복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으면 얼마나 불행해질까. 기상청이 날씨를 예측하듯이 우리도 자신의 정서에 대해 마음 속으로 끝없이 예측해보며 산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들이 과연 정확한지, 그 과정에서 범하는 오류들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연구 하고 있다.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는 대표적 학자들로는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팀 윌슨(Tim Wilson)과 하버드 대학의 댄 길버트 (Dan Gilbert)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윌슨 교수는 지난 주 필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사건들의 여파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면서 한국 학생들의 조기 유학도 '과도한 희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의 연구는 행복과 연관해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쁜 일이 생긴 직후에는 불행을 느끼지만 많은 심리적 기제들을 동원하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평소의 감정 상태로 되돌아온다.
마찬가지로 좋은 일도 새로움이 사라지면 더 이상 행복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길버트 교수와 함께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적응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긍정적ㆍ부정적 사건들의 여파가 실제보다 오래 갈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
-많은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현재를 희생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유학이 부모 자신과 자식에게 가져올 장기적인 행복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만약 유학의 결과물이 자식의 삶에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조기 유학은 과도한 희생이라고 본다."
-행복에 대해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한 가지 조언이 있다면 절대로 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사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결정적이므로 여기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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