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극장에 가지를 않아요. 껌껌하고 많은 사람이 들어있는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죠. 저의 불구성을 고백하는 겁니다.”
“뮤지컬은커녕 영화, 그 흔한 TV조차도 거의 보지 않으며 책만 읽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소설가 김훈(61)씨가 창작 뮤지컬의 원작자로 제작발표회 자리에 나왔다. 2007년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장편소설 <남한산성> 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남한산성’이 성남아트센터 개관 4주년 기념공연으로 제작돼 10월 초연된다. 남한산성>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뮤지컬 ‘남한산성’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자인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과 연출가 조광화씨, 각색을 맡은 극작가 고선웅씨 등과 나란히 단상에 앉은 김씨는 “소설의 시발점으로, 내가 남한산성에서 느꼈던 ‘인간의 현실’에 대한 슬픔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더 실감나게 국민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내 원작이 뮤지컬의 배경과 토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뮤지컬 창작자들의 독창성과 상상력을 구속하는 조건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_ 소설 <남한산성> 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데 대한 소감은. 남한산성>
“성벽이 지금처럼 복원돼 있지 않던 시절부터 남한산성에 자주 갔었는데 병자호란 때 무너진 폐허가 군데군데 남아있는 성벽을 보면서 끔찍한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살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라. 그 슬픈 결심으로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삶의 의지는 전쟁에서 이겼느냐 졌느냐를 따지는 유치한 현실 인식보다 더 고귀한 것이다. 비극의 현장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독자와 국민에게 역사의 의미가 보다 더 실감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고 있다. 남한산성에 관한 많은 사료가 보존돼 있는 만큼 뮤지컬 ‘남한산성’은 내 소설 없이도 만들 수 있었을 테고, 그게 우리나라 문화로 봐서는 더 좋은 일이겠지만 내 소설을 뮤지컬로 만들어 준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_ 평소 뮤지컬을 관람하는지.
“뮤지컬을 본 적은 없다. 평생 본 영화도 다섯 편을 넘지 않는다. 영화를 몇 번 봤더니 스크린이 너무 커 사람의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의 영역이 없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더라. 앞으로도 극장이라는 곳엔 안 갈 생각이다.”
_ 그렇다면 뮤지컬 ‘남한산성’은 볼 건가.
“오프닝 때는 가긴 갈 거다. 연극이나 영화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 많이 모인 껌껌한 공간이 싫은 거다. 난 주로 강가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새를 보면서 논다.”
_ 원작자로서 소설을 뮤지컬 대본으로 각색하는 작업에는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나.
“내가 소설로 그린 틀을 유지하는 한 각색에 관여할 생각은 없지만 뚜렷한 하나의 견해는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을 적대 관계로 그리거나 어느 한쪽이 이념적으로 우월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내 또 다른 소설 <칼의 노래> 가 TV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도 내 요구는 ‘한국과 일본의 전쟁에 관한 것이지만 일본 군대라고 해서 졸렬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단 한 가지였다. 뮤지컬 역시 ‘인간의 현실이 포함하는 불가피한 비극의 양면성’이라는 걸 그려야 한다고 ‘각색씨’(작가 고선웅)에게 부탁했다. 그것으로 나의 주문은 끝났다.” 칼의>
■ 뮤지컬 '남한산성'은
뮤지컬 '남한산성'은 성남아트센터가 소설 <남한산성> 이 출간된 2007년부터 남한산성이 소재하고 있는 경기 성남시만의 특화된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기 위해 준비해온 작품이다. 약 3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배우와 전문 무용수 4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남한산성>
1636년 겨울 병자호란 때 청의 대군을 피해 인조가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47일간 머물며 겪었던 일을 다룬 김훈씨의 소설 <남한산성> 을 바탕으로, 뮤지컬 대본은 극작가 고선웅씨가 새롭게 쓰고, TV 드라마음악 작업을 주로 해 온 작곡가 김동성씨가 곡을 붙인다. 연출은 조광화씨가 맡았으며, 인터파크INT가 공동제작사로 참여한다. 남한산성>
원작자와 제작진은 "뮤지컬은 소설의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등장 인물을 수용하면서 '인간은 시련을 견디고 살아야 한다'의 소설의 정신을 반영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본을 맡은 고선웅씨는 "김훈 선생의 산맥을 넘어 남한산성에 잘 입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많았지만 결국 원작의 역사적 의미를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면서 "혹독한 시련을 견딘 민초와 관료, 모든 인간의 모습을 담아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연출자 조광화씨 역시 "실패한 상황이든 위대한 상황이든 버텨내는 게 숭고하다"면서 "역사를 고증하기보다 과감한 무대 분할과 느와르 영화 같은 강렬한 흑백 대비 등 모던한 해석으로 스타일에 비중을 둔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남한산성'은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뒤,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의정부예술의전당 등 경기도 지역에서 차례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2010년 이후에는 서울은 물론 중국, 호주, 프랑스 등 해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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