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곗돈을 부었던 김OO는 계주가 돈을 떼어먹고 달아나 발을 구르고 있다. 어느 날 막내가 실종된 이OO는 직장을 그만두고 찾아 다닐 수도 없어 눈앞이 캄캄하다. 중소기업 사장 박OO는 한 직원이 제품과 정보를 빼돌리는 것 같아 속을 태운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최OO도 그렇다. 김 이 박 최 씨는 각자 관할 경찰서에 가서 하소연했으나 “뭐 얼마 되지도 않는데” “미아 명단에 올려 놓겠다” “수사 사안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현실적인 공권력의 사각지대가 어디 이런 일 뿐이겠는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이런 일을 당하면 찾게 되는 곳이 심부름센터다. 돈 많은 사람이라면 경찰을 구워삶아서라도 동원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1960년대 후반에 생긴 흥신소는 80년대 이후 심부름센터로 변신했다. 공권력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일반인의 애로사항이 뒷전으로 밀렸고, 현실적으로 그만한 일에 매달릴 인력도 없다. 이렇게 쏟아져 나온 센터는 사업자 등록만 하면 되기에 전국에 200여 곳이 등록돼 있고, 미등록 불법센터도 수천 개나 된다. 돈만 주면 안하고 못하는 일이 없어 장기밀매 청부살인 등의 범죄도 자주 일으킨다.
■긍정적 의미의 흥신소나 센터를 지향하는 민간조사원(PIㆍPrivate Investigator)이 많다. 탐정(Detective) 정도의 의미인데, 사단법인을 만들어 2000년부터 능률협회 후원으로 교육도 하고, 2004년부터 산업인력공단에서 훈련도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협정에 의해 1997년 탐정시장이 개방돼 미국 호주 등의 탐정사무소가 한국에 지사를 차리고 기업을 상대로 성업 중이다. 일본만 해도 6만~7만 명의 PI가 활약하고 있는데 OECD국가 중 우리나라만 관련 법이 없다. 알짜배기 일은 외국 PI가 다 챙기고, 한국 PI들은 쭉정이만 줍고 있다.
■엊그제 검찰이 ‘민간조사법(가칭)’을 만들어 곧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이 발의한 민간조사제도 도입을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검찰안과 이인기안 모두 PI제도를 법제화하자는 데 공감하고 있으나 주관을 법무부가 하느냐 경찰청이 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민간인이 범죄수사까지 관여하는 외국의 ‘셜록 홈스 법’이 시기상조라면 흥신소나 센터를 양성화하고 관리ㆍ감독하는 법부터 서둘러야 한다. 이 문제에 변호사협회까지 끼어 들어 밥그릇싸움을 하느라고 법제화가 10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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