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2,000원까지 치솟았던 환란 전후. 경제적 폐허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웃는' 곳이 있었다. 바로 수출업체들이다.
고(高)환율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수출업체들은 신바람이 났고,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수출은 품질ㆍ기술경쟁력 보다는 가격경쟁력에 의존했던 상황. 어쨌든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 덕분에 실물경제는 빠르게 회복됐고 구멍 난 외환보유액도 메울 수 있었다.
환란은 고환율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환율은 수출확대→외환유입→경기회복을 통해 환란극복의 1등 공신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고환율의 역설'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지구촌 경제가 모조리 침체되다 보니, 환율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출자체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물건을 팔 곳이 없는데 가격경쟁력이 좋아진들 무슨 소용이 있나"고 반문했다.
업계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보다 경영 불확실성으로 인한 리스크가 더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레이저프린터 토너재생업체인 컴베이스의 박남서 사장은 "현재 환율로 계약 하더라도 제품을 생산 공급하기까지 2,3개월이 걸리는데 그 사이 환율이 떨어지면 손해를 볼 수도 있어 현재로선 적극적인 영업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수출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환율상승이 아니라 환율이 예측 가능하도록 안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환율상승 덕에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리긴 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외환 관련 손실이 전년의 310억원에서 2,490억원으로 8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파생상품 평가 손실도 1,310억원에 달했다.
지금 산업현장에선 환율 상승으로 '환호'는 사라진 대신 '비명'만 들리고 있다.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정유업계. 통상 원ㆍ달러 환율이 1원 오를 때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가 입는 환차손은 8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1월5일 1,313.50원이었던 환율이 이날 1,389.50원까지 오른 만큼 정유업계 전체로는 새해 이미 6,000억원이 넘는 환차손이 발생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환율 상승으로 기름값도 더 오를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렇지 않아도 유류세 환원으로 휘발유가격이 크게 오른 상태인데, 여기서 환율로 인해 기름값이 더 오른다면 소비자들의 가계부담과 기업들의 채산성은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 내수는 더 얼어붙고, 경기회복은 그만큼 요원해지는 셈이다.
철강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통상 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원료인 철광석, 유연탄, 고철 등의 결제자금으로 사용하는데, 환율이 급등할 경우 달러화 결제를 위한 원화 자금이 추가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환율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손실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박기수 기자
정민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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