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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신(新) 야만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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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신(新) 야만시대

입력
2009.02.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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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를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과연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와 테러진압에나 동원되는 경찰특공대 투입, 토끼몰이 하듯 무차별적인 진압으로 인한 다수의 철거민과 경찰관의 사망…. 1970,80년대에 익히 봐왔던 살풍경을 다시 봐야 하는 상황 자체가 괴롭고 힘들다. 개발독재 시대에도 경찰의 시위대 진압으로 인한 무더기 사망사건은 없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과거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장면이 더 큰 강도로 되풀이되는 것을 보고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가 지키고 쌓아올린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민주와 인권이라는 지고의 가치와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쏟아 부었던 그 많은 열정과 노력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닌지 허망한 심정이다. 어느 나라와 견줘도 손색 없는 민주국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다. 마치 도심에 침투한 게릴라를 소탕이라도 하는듯한 무자비한 군사작전에서 민주니 인권이니, 생존권이니 하는 단어는 화려한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 동안 우리는 진정한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가진 사람, 승자들만을 위한 제도와 관행을 지키고 만드는데 더 공을 들이면서도, 이를 민주화의 발전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닌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 참사를 일으킨 재개발제도는 그런 문제가 응축된 사례다. 낡은 집을 부수고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를 벽돌 찍어내듯 생산해 내는 방식은 70년대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개발연대 시대는 그렇다 해도 적어도 민주화된 이후에는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업자들만 배불리는 그러한 재개발방식이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가 진작부터 검토돼야 했다. 뉴타운 개발후 원주민 정착율이 30%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지만, 세입자와 영세상인들의 고통과 한숨을 짓밟고 이뤄지는, 인간을 무시하는 재개발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곱씹어봐야 했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철거촌의 상황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심각해졌다”는 작가 조세희씨의 말은 두고두고 가슴을 후빈다.

선진국들은 주택공급 위주의 재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징과 문화를 그대로 살리는 다양한 방식의 개발방식으로 전환한지 오래다. 우리는 어떤가. 종로 뒤편의 정감어린 피맛골 대신 엄청난 높이로 들어선 주상복합 건물에서 600년 된 유서 깊은 도시의 옛모습은 찾아볼 길 없다. 이런 토건국가를 지향하는 듯한 천편일률적인 재개발 방식에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멍박 정부가 내세우는 법과 원칙에서도 인간의 얼굴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과 질서를 사회유지의 기본이념으로 정립하는 것은 언뜻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이는 결국 기득권층과 제도권내에 속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라는 데 생각이 닿아야 한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법과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사회의 그늘을 살피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지금은 법치(法治)보다 인치(仁治), 덕치(德治)가 더 필요한 시기다.

이충재 부국장 겸 사회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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