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인한 실업, 가속화하는 가족 해체. 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이다. 이 땅의 젊은 문인들이 그들을 위무하고 격려하는 글을 한데 묶었다.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마음의숲 발행)는 소설가 김인숙 공선옥 김연수 박민규씨, 시인 안도현 나희덕 문태준씨, 동화작가 채인선씨 등 30~40대 문인 23명이 쓴 희망의 에세이집이다. 그들은 사랑, 가족, 젊음, 욕심없는 소박한 삶과 같은, 어려운 시대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전언한다. 괜찮아,>
소설가 박민규씨는 서른살이던 어느 봄날 적었던 일기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푸른 20대를 막 떠나보낸 그는 이렇게 썼다. “청춘은 갔다.”. 그후 10년 세월이 흘러 그는 결혼을 했고, 아버지가 됐으며,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었다. 마흔의 봄, 아들의 손을 잡고 작은 개천이 흐르는 들판을 찾은 그는 “아빠 기분좋지?”라는 아이의 물음에 불현듯 청춘을 떠올린다. 청춘이 있었던가? 그 옛날 마치 백악기나 중생대 같이 낯설게 들리는 ‘청춘’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는 깨닫는다. “단언컨대 대부분의 한국인은 청춘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그가 보기에 학교, 학원, 집을 오가고 재테크와 내집마련에 젊음을 탕진하는 한국인들에게 진정한 청춘은 없었다. 그 깨달음에 이른 순간 그는 아내에게 “언제고 꼭 한 번 ‘청춘’을 살고 싶어”라고 선언한다. 그의 선언은 이내 독자를 향한다. “감히 말하건대 시건방 떨지 마라. 청춘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저, 푸를 청, 봄 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두 딸아이에게 일부러 밥을 더 먹이지도, 남들보다 더 안아주지도 않고 키웠다는 동화작가 채인선씨는 큰 딸과 겪었던 갈등을 전하며 가족애의 가치를 이야기한한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거짓으로 일관하고 엄마의 시선을 피하는 아이를 타이르던 채씨는 딸의 이유없는 반항이 “엄마는 내가 이렇게 엄마를 속상하게 해도 나를 사랑할 거야?”라고 묻는 것임을 알아차린다. “넘치는 것보다는 모자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사랑만은 철철 넘치도록 주고받아도 될 것 같다”고 채씨는 썼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집 안에 들이는 것을 꺼려했던 시인 문태준씨는 강아지와 기니피그를 키우자는 아
이들의 요구를 거북이로 무마한 뒤, 거북이과의 동거 경험을 통해 건져올린 깨달음을 들려준다. “거북은
자기 살림의 질서를 나름대로 갖고 있었다. 한가하고, 욕심을 적게 부리며, 기다릴 줄 알며, 서두르거나
조급하지 않으며, 침묵을 즐기는 고아한 성품이 있었다.” 문씨에 따르면 거북은 ‘수오(守吾)’의 경지에
이른 존재였던 것.
소설가 공선옥씨는 휴대전화, 자동차, 신용카드 등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3무(無)를 소개하면서 “모든 물건들이란 게 가져서 좋은 점이 있으면 가지지 않아서 좋은 점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가져서 나쁜 것은 안 가져서 나쁜 것보다 훨씬 악성이다”라며 검박한 삶의 미덕을 칭송한다. 소설가 엄광용씨는 실크로드 기행에서 목도한, 중국 신장 사막지대의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수십km 길이의 인공 관개수로를 떠올린다. 엄씨는 “그것은 수천년 전 사막에 살던 사람들이 마음 속에 ‘희망’이라는 나무를 심고,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며 피와 땀을 흘린 끝에 얻어낸 행복의 열매”라며 “요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내면풍경은 사막과도 같다. 자신의 마음 가운데 행복이 열리는 ‘희망’이란 나무를 심어야할 때”라고 말한다.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는 지난해 말 선보인 소설가 박완서, 철학자 윤구병씨와 이해인 수녀 등 각계 원로들의 에세이집 <괜찮아, 살아있으니까> 의 후속편 격이다. 3월께 방송인 이홍렬, 임백천, 손미나, 김주하씨 등의 글을 모은 에세이집 <괜찮아, 웃을 수 있으니까> (가칭)으로 이 시리즈는 마무리될 예정이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박희영 마음의숲 편집팀장은 “유명인들의 거창한 인생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순간에서 희망을 끄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을 위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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