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컬처노믹스와 스토리노믹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컬처노믹스와 스토리노믹스

입력
2009.02.06 00:03
0 0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을 본 친구가 말했다. "정말 썰렁하더라. 로렐라이 전설이 아니라면 가볼 까닭이 도무지 없는 곳이다." 로렐라이 언덕이라고 해서 다른 언덕보다 특별히 풍광이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얽힌 이야기다. 독일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도 그렇다. 사실 '철학자의 길'이라는 사연 또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오르기 지루한 언덕길에 불과하다.

로렐라이 언덕이나 '철학자의 길'처럼 세계적으로도 그 사연이 널리 알려져 있는 곳도 많지만, 한 마을이나 동네 사람들만 아는 사연과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도 많다. 외지인이 보기에는 평범한 바위 하나에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냇물에 듬성듬성 자리한 징검다리는 윗마을 처녀와 아랫마을 총각의 오작교 그 자체다. 마을을 둘러싼 공간 전체가 전설과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작한 이야기, 즉 소설이 실제 지역과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은 지리산이 우리 근ㆍ현대사에서 지니는 비극적 의미를 한층 더 깊이 해주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평창에서 매년 열리는 대표적인 축제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지자체들끼리 옛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의 연고권을 놓고 다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야기의 연고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서울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까? 첨단을 달리는 거대 도시 서울이고 보니, 과연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서울은 이야기의 보고다. 예컨대 박태원의 <천변풍경> 을 통해 우리는 청계천 일대에서 신산한 삶을 살았던 우리의 지난 날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박완서의 많은 소설들에서 우리는 6.25 전쟁을 전후로 한 서울 거리와 만날 수 있다.

어디 문학 작품을 통해서 뿐이겠는가. 서울은 현대 도시이기 전에 삼국 시대부터 요충지로 중요하게 간주되었고 조선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으니, 그 기나긴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 자원을 더해왔을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이른바 컬처노믹스를 일종의 정책 아젠다로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 컬처, 즉 문화와 이코노믹스, 즉 경제학을 결합시킨 신조어로 문화와 경제의 상생 발전을 뜻하는 듯하다. 문화적 인프라를 확충하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도시의 문화적 수준과 품격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컬처노믹스의 지향점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문화적 인프라가 반드시 유형의 시설만 뜻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이야기 자원들도 일종의 문화적 인프라가. 방방곡곡 숨겨져 있는 이야기 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 그래서 그것을 보다 널리 보급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 컬처노믹스 개념을 빌려 표현한다면 스토리노믹스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매력이 곧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비단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지자체들이 이러한 스토리노믹스에 정책적, 재정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나라가 이야기 강국이 되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