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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세븐럭' 카지노 현장경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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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세븐럭' 카지노 현장경리팀

입력
200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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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 에서는 ‘돈 세는 재미를 앗아가니 (주인공의) 주둥이가 댓발이나 튀어나왔다’는 표현이 있다. “손으로 돈을 만지지 말라니. 돈 세는 재미가 얼마나 기가 막힌 데”라는 구절이다. 오죽했으면 돈 주고 어렵게 산 양반증서를 내팽개치고 달아났을까.

대다수 사람들은 ‘내 돈 아니어도 좋으니 원 없이 세 봤으면…’하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런데 대놓고 “돈 세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한술 더 떠 돈을 종이 쪼가리에 비유한다. 세상을 거꾸로 살아도 유분수고, 세속을 달관해도 정도가 있는 법.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직장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돈들의 집산지인 카지노라는 사실. 도대체 무엇이 돈 세는 재미를 앗아간 걸까.

국내 최대 외국인전용 카지노 ‘세븐럭’(Seven Luck)을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한국관광공사 자회사) 현장경리팀의 김도곤 팀장, 허경영 대리, 권소연 사원(이상 힐튼점)을 만났다. 현장경리팀은 외화환전, 위조지폐 식별, 매출 계산, 자금일지 작성 등을 도맡는다. 쉽게 말해 ‘카지노 안의 은행’인 셈이다.

유리 벽이 쳐진 5평 남짓 공간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환전, 현금교환, 재환전, 당첨금 수령 등으로 구분된 5개의 창구는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 의자 주위엔 계산기, 돈을 세는 각종 계수기, 통화마다 구비된 위조지폐 감별기, 수표 스캐너(감식기)가 둘러싸고 있다. 하루 평균 상대 고객은 2,000명, 거래 규모는 평일 70억원, 주말 200억원 가량이다.

“100원 받고 100원 주는 일을 누가 못해”

하는 일은 간단해 보인다. ‘돈을 받아서 정확히 센 다음 환율 등의 조건을 따져 고객이 원하는 것(칩이나 다른 통화)으로 에누리없이 바꿔주는’ 업무다. “누구나 할 수 있겠다”고 했더니 즉각 “와서 해 보시라”는 답이 돌아온다.

허 대리는 “단순 업무지만 지루함보다 긴장감이 더 하다”고 했다. 현장경리 한 사람이 매일 보통 30억원을 만지는데 단 1원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100원을 받아 그 가치대로 교환하면 되는 일처럼 보이지만 매일 바뀌는 환율을 감안해야 하고, 혹시라도 섞여있을지 모를 위조지폐를 골라내야 하고, 외국인이 고객이라 외국어에도 능통해야 한다”(김 팀장)는 것이다.

조폐공사에서 진행하는 위조지폐 식별 교육도 받아야 하고, 틈틈이 경제공부도 해야 한다. 카지노가 연중무휴 24시간 돌아가는 터라 생체리듬이 깨지고 원만한 대인관계도 어그러지는 3교대 근무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현장경리는 보통 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통제 구역이라 각종 법규와 까다로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입금 확인은 3인 연대서명, 금고 열쇠는 2개로 나눠 2인이 따로 보관, 거액(원화 2,000만원, 달러 1만불 이상)은 관련 기관 보고 등 셀 수없이 많다. 당일 입금된 돈을 통화별로 관리하고, 적정 외화보유액을 늘 점검해야 하는데다 VIP 고객이라도 찾는 날이면 거래규모 예측까지 해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날 만하다.

그러니 “입사 초기엔 ‘저 많은 돈이 다 내 돈이었으면’ 했는데, 요즘엔 지겨운 종이로 보인다”(권 사원)는 푸념이 헛말이 아니다. 팀원들의 낯빛이 보통 굳어있는 것(물론 고객을 대할 때는 미소 짓는다)도 ‘돈 세는 고통’이 안겨주는 극도의 긴장 탓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22대의 감시 카메라가 ‘보호’ 중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워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는 어쩔 수 없다. 가끔 돈이 비기도, 남기도 한다. 거쳐간 수많은 고객을 붙잡고 일일이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찾는다 해도 고객이 오리발을 내밀면 난감하다”(김 팀장)고 했다.

회심의 해결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감시카메라. 현장경리팀 천장 위엔 줌 기능을 갖춘 22대의 카메라가 촘촘히 늘어서 있다. 우스개 소리로 “코도 맘대로 후빌 수 없고 삐딱하게 앉을 수도 없는”(허 대리) 구조다.

그러나 비상사태엔 은인이 따로 없다. 카메라가 1초도 놓치지않고 시시각각 찍은 화면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자료이기 때문. 김 팀장은 “계산이 맞지않을 때 화면을 돌려보면 문제를 정확히 찾을 수 있고, 행여 오랜 게임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고객이 ‘칩을 덜 줬다’는 식의 항의를 하더라도 자료화면을 보여주면 바로 순응한다”고 했다.

카메라가 흔히 생각하는 사생활의 감시자가 아니라 업무 보호자 기능을 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돈을 더 줬다”고 하면 일본인은 금방 돌려주는데 반해 중국인은 화면을 보여주기 전까지 버틴다는 것.

카지노의 꽃은 딜러! 그럼 우리는?

카지노는 행운을 신봉하는 곳인지라 유별난 고객도 많다. “종이뭉치를 구겨서 던지길래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돈 달라고 해서 끄집어 펼쳤더니 수표였다.”(권 사원) “돈이 게임기 밖으로 다시 튀어나는 게 싫어 신권만 고집하는 90대 고객도 있다.”(김 팀장) “전날 1,700만원을 딴 고객이 제가 환전해 준 게 행운이었다며 다음날 비번인 저만 찾기도 한다.”(허 대리) 특정 현장경리에게 환전한 이후에 돈을 따면 여지없이 해당 현장경리의 단골 고객이 된다.

흔히 불리는 카지노의 꽃은 딜러다. 숫자도 많은데다 고객과 호흡하며 웃고 울기 때문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가장 많이 받는다. ‘단골 고객’이 있다지만 현장경리는 늘 음지에 있다. 복지나 대우 등 딜러 중심으로 운영되는 시스템도 서운한 부분이다.

세상은 몰라줘도 자부심은 남다르다. “환전 수수료 수입(1년에 66억원) 등 카지노의 매출이 시작되는 회사 수익의 최전선”(김 팀장), “사행산업이 아니라 레저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업무”(허 대리), “카지노 전체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컨트롤 타워”(권 사원)이기 때문이다.

카지노 현장경리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양분을 제공하는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카지노의 자양분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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