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로르까
비엔나에는 열 명의 소녀가 있네,
죽음이 흐느끼며 기대고 있는 어깨가 있네,
난도질 당한 비둘기들의 숲이 있네.
서리의 박물관 속에 아침의 부서진 조각이 있네.
천 개의 창문이 달린 살롱이 있네.
아, 아, 아, 아!
다문 입으로 이 월츠를 받아주오.
이 월츠는 이 월츠는 이 월츠는
승낙과 죽음과 꼬냑의 월츠,
바다 속에 긴 옷자락을 젖게 하는 월츠.
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생기없는 책과 안락의자와 함께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백합의 어두운 다락방에서,
달이 있는 우리들의 침대에서,
그리고 거북이가 꿈꾸는 춤 속에서,
아, 아, 아, 아!
휜 허리로 이 월츠를 받아주오.
비엔나에는 몇 개의 거울이 있네,
그 안에서 그대의 입과 메아리가 놀이를 하고 있네,
소년들을 시퍼렇게 칠하는
피아노를 위한 어떤 죽음이 있네.
지붕들을 에워싸고 거지들이 있네.
신선한 눈물화환이 있네.
아, 아, 아, 아!
그대 팔 속에서야 끝이 나는 이 월츠를 받아주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다락방 속에서,
헝가리에서 온 낡은 빛이 꿈을 꾸고있는
미지건한 저녁의 웅얼거림 속에서,
보아요, 그대의 이마, 어두운 고요함에 얹힌
눈으로 만들어진 양과 백합을.
아, 아, 아, 아!
받아주오, ‘너를 언제나 사랑해’라는 이름의 이 월츠를
(후략)
레오나드 코헨의 노래 ‘Take this Waltz’는 잘 알려져 있듯, 로르까의 이 시가 원작이다. 이십대가 끝나갈 무렵, 나의 저녁을 지배했던 노래였고 시였다. 스페인 시인, 로르까의 비극적인 죽음과 서울의 막막한 저녁 사이를 오가며 들었고 읽었던 노래였고 시였다.
한 선배가 나에게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선물했는데 그 안에는 이 노래만 열 번이나 넘게 녹음되어 있었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시, 혹은 노래 한 편이 한 세월을 꽉 손에 쥐고 있다니. 물론 그때 다른 노래가사들도 있었다. ‘달의 몰락’이라든가, ‘개여울’이라든가, ‘파도’라든가.
이십대가 끝나갈 무렵이라고 세계가 몰락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그렇게 아찔한 비극의 이미지를 꼭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세월이 좋다. 그때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위하여 목숨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호함과 매서움과 분노와 설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에 매혹된 한 영혼은 촉촉했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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