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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떠나보낸 책, 밀려오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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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떠나보낸 책, 밀려오는 아쉬움

입력
2009.0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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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앞둔 교수들이 가장 고민하는 일은 학교의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과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 정년을 1년 앞두고부터는 정년 후에도 반드시 필요한 책, 필요한 책, 있었으면 좋을 책, 버릴 책 등으로 분류하여 서가를 정리해 나갔다.

그러나 정작 연구실을 비워야 할 시기가 임박할수록 나 자신의 일방적이고도 느슨한 분류기준은 책들이 옮겨가야 할 아파트의 공간 규모와 타협해야 하기에 점차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나는 정년을 앞둔 학기의 마지막 달 하순까지 책 정리에 매달려 있다가 마침내 떠밀리다시피 연구실에 끝까지 남아 있던 책과 자료들을 방출했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수고한 제자들과 더불어 소주잔을 나누며 방출해 버린 책과 자료들에 대한 나 자신의 회포를 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년 이후 그 전부터 진행해 오던 저술 작업의 어떤 대목에서 이미 방출해 버린 책의 특정 부분이 적합하리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이하랴. 그 책은 이미 나의 수중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다시 발품을 팔아야지 달리 방도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한때 집안의 서재와 학교의 연구실에 자료를 분산하여 비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거나 글을 쓰면서 곧잘 직면하는 어려움은 학교에 있으면 집에 있는 책이, 그리고 집에 있으면 학교에 있는 자료가 필요하여 낭패를 당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보관을 위한 자료나 책이 아닐 경우 이를 학교의 연구실로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년을 한 지 3년째를 맞이하는 오늘의 나에게 있어서 서재는 아파트의 옹색한 방으로 한정되고, 이 서재에는 '꼭 필요'하리라는 기준에 의해 남겨진 자료들 때문에 추억과 손때 묻은 적지않은 책과 자료들이 설 자리를 잃은 쓸쓸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기에 나는 올해에는 정년이란 여유로운 시공간이 세속적인 필요에 내몰리는 현상을 역전시키는 꿈을 꾸어본다.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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