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아저씨들이 돌아왔다. 1980~90년대 안방에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최양락과 이봉원이 다시 브라운관을 흔들고 있다. 이들이 예능프로그램에 복귀하자마자 시청자들의 눈을 단번에 잡으면서 '왕의 귀환', '저씨 시대의 도래'라는 말들이 나온다. 잊혀졌던 두 중년 개그맨들이 '인기 회춘'에 성공할 수 있었던 필살기 3종 세트를 소개한다.
■ 순결한 입담
그들의 입담은 순결하다. 독하고 빨라야만 살아 남는 이 시대,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욕설수준의 막말과 독설은 이들 입에서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순결한 입담이 전하는 웃음은 강한 번식력을 지녔다. 그저 일상 속에 묻힐 법한 소소한 삶의 경험담은 이들의 입을 타면서 무한대로 웃음을 증식 시킨다.
최양락의 일명 '젖꼭지'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 공중목욕탕에서 최양락이 때밀이 아저씨한테 몸을 맡겼는데, 이 아저씨가 반가운 나머지 너무 열심히 때를 밀어 급기야 젖꼭지가 너덜너덜 해졌다는 이야기는 인터넷 주요 검색어로 떠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신선하다', '새롭다'는 반응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웃음이 자연스럽고 따뜻하다'는 호평도 잇따른다. SBS 예능프로그램 '야심만만2'의 곽승영PD는 "두 사람은 방송심의가 엄격했던 시절 활동했던 분들이라 독한 말과는 거리가 멀다"며 "천부적인 입담이 막말 방송에 염증을 느낀 시청자들에게 상큼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산전수전
50년 가까이 살아온 얘기도 이들에게는 훌륭한 웃음의 불쏘시개다. 젊은 시절 성공가도를 달렸던 두 사람의 카메라 밖 일상에서 캐낸 웃음에 시청자들은 정다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첫 사업이던 단란주점은 심야영업 단속에 걸려 부도가 나고, 백화점 커피전문점을 열었지만 백화점 자체가 손님이 없어 또 부도를 맞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이봉원의 모습에서 삶의 페이소스와 희망을 함께 보고 있는 것.
씁쓸한 실패담이 자칫 '자학 개그'나 '한탄 개그'로 비화되지 않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다. 최양락은 '경기 양평군서 운영하던 카페가 잘 안돼 팔았더니 곧바로 땅 값이 올랐다'면서도 허허거리며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넘긴다. 시청자 김영현(35)씨는 "이것 저것 다 겪어봐서 굳이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두 사람이 부담 없이 툭툭 던지는 유머가 참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다년 간 챙겨온 개그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보따리도 이들의 자산이다. '몇 년 전 한 원로 선배가 대기실에서 (고희를 훨씬 넘긴 송해씨에게)송해야 청심환 사와, 라며 심부름을 시켰다'(최양락)는 황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 예능본색
이들 몸에 새겨진 '예능 DNA'도 무시할 수 없다. 최양락과 이봉원은 1990년대 후반 SBS 예능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을 공동 진행했을 정도다.
출연진끼리 미리 입을 맞춰 개인기나 유행어로 웃기는 콩트식 개그에 강할 뿐 아니라, 예능의 필수 조건인 순발력도 만만치 않게 발휘해온 셈이다. 곽승영PD는 "이미 버라이이티쇼에서 성과를 냈던 분들이라 최근 트렌드에도 금방 적응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시청자층의 변화가 이들의 귀환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TV 주시청자층이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개그에 열광하는 20대에서 포근하고 의미 있는 개그를 선호하는 30~40대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안우정 MBC 예능국장은 "주시청자층이 변화하면서 방송출연 연예인들의 평균 연령도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국장은 "최양락, 이봉원은 워낙 웃기는 재능이 특출난 개그맨"이라며 "항상 시대를 따라가고 절차탁마해 온 두 사람은 기회만 오면 언제든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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