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돌던 소년 짐(제임스 딘)은 술 마시다가 경찰서에 잡혀간다. 짐은 이곳에서 처지가 비슷한 주디(나탈리 우드)를 만나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주디는 이미 다른 남자인 버즈와 사귀고 있었다. 버즈는 짐에게 시비를 걸며 절벽에서 자동차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각자 차로 절벽을 향해 달리다가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버즈는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짐은 주디와 함께 빈 저택에서 밤을 보내다가 복수하러 온 버즈 친구들에게 쫓기게 된다.
▦1955년에 제작된 영화 <이유 없는 반항> 에 나오는 치킨게임의 한 장면이다. 생애 단 3편의 영화 출연으로 할리우드 아이콘으로 각광 받았던 제임스 딘이 두 번째 주연한 이 영화는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을 그린 명작으로 꼽힌다. 짐과 버즈가 벌인 치킨게임은 당시 미국 청년들 사이에 유행한 놀이였다. 둘이 자기 차를 몰고 누가 더 절벽 가까이 가느냐, 또는 마주 보고 차를 몰아 누가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느냐로 배짱을 겨뤘다. 핸들을 미리 꺾은 사람은 겁쟁이(치킨)로 몰렸다.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절벽으로 추락하거나, 충돌함으로써 모두 자멸하게 된다. 이유>
▦치킨게임 이론은 1950~70년대 미국과 옛 소련 간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꼬집는 데 원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널리 사용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둘러싸고 미국과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기업들이 무모한 출혈 경쟁을 벌일 때도 이 이론이 인용되고 있다. 반도체업체들이 D램 값이 2년 전에 비해 10% 수준으로 추락했는데도 감산하지 않고 '너 죽고 나 살기'식 버티기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D램분야 세계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비롯 일본 대만 독일업체들은 팔면 팔수록 대규모 손해를 보는데도 절벽 끝까지 차를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반도체업계의 체력싸움이 지속되면 국내 업체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가경쟁력, 기술력, 영업이익률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세계 5위 D램업체 독일 키몬다가 최근 파산 신청을 하면서 치킨게임이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부문에 7조원을 투자해서 시장이 호전되면 부동의 1위 위상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국내 업체들이 생사를 건 치킨게임에서 살아 남아 반도체강국의 위상을 이어갔으면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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