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킹엄 등 지음ㆍ김민주 등 옮김/웅진윙스 펴냄ㆍ504쪽ㆍ1만8,000원
"솔직히 여기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아직 올라가야 계단이 많습니다. 갈 길은 멀지, 뒤에서는 젊은 아이들이 쫓아오지,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젊어 보이는 게 최고죠."(110쪽) 10대(가슴 확대)에서 60대(주름살 제거)까지 성형수술이 필수가 돼 버린 미국에서 '상처를 남기지 않는' 성형수술 전문가로 유명한 필자가 대기업 중견 간부로부터 들은 고백이다. 공감하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세계 경제가 점점 글로벌화됨에 따라 과거처럼 어느 도시에 한 번 정착하면 그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게 아니라, 계속 다른 도시로 옮겨 가며 살 수 있다."(42쪽) 인터넷, 노마드, 럭셔리 쇼핑 등 이른바 새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라면 저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이 책은 더 멀리, 깊이 본다. 외적ㆍ기술적 변동 속에 숨어있는 흐름의 의미를 통찰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람들과 늘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했던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 단절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보나 지식은 물론 우정과 유대감을 공유할 수 있는 여성 커뮤니티의 현재와 미래상이 이어 펼쳐진다.
경제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금세기 초입의 세계경제난은 미국인들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을까? 미국의 트렌드 예측ㆍ컨설팅 전문가들이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분야별 전문가 50인을 인터뷰해서 건져올린 보고서인 이 책 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논의가 진지하고, 미래상이 실제적인 이유다. 생활ㆍ교육, 사업, 환경ㆍ문화, 과학ㆍ여가 등 대제목 하에 묶여있는 소제목은 21세기의 키워드를 압축해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비판적 입장은 현실적으로 현재의 미국 혹은 미국적 세계관이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린피스의 미국 지부장은 "이라크가 대량학살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에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댄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며 "이라크 전쟁의 진짜 원인은 석유"(126쪽)라고 못박는다. "석유회사와 한패가 돼 놀아나던 정치인들"이 도마에 오른다.
특히 보건 분야에서 필자의 시선은 곧바로 미국의 치부를 노린다. 복잡한 외과 수술 과정, 게놈 프로젝트 등 흔히 진보적이거나 미래지향적으로 평가되는 의학의 발달상은 '의학맹' 나아가서는 '보건맹'인 보통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내용은 기시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인터넷, 성, 결혼 문화와 관련된 대목에서 한국이 한 발 앞서 있음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표의 시각도 이 곳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교사로 읽혀지는 부분도 있다. 노인성 질환을 논하는 대목에 이르러 저자는 미국 정부에 극히 부정적 시선을 보낸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치매 약값을 내리라는 압력을 넣지 않는 나라는 미국뿐"(83쪽)이라며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책 또한 낙제점"이라 질타한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 최소한의 객관적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미국인이 차분히 설명하는 셈이다.
한 성형 명의의 자문은 이 시대 미국식 물질주의의 허를 찌른다. "흠잡을 데 없는데도 성형을 하겠다고 병원에 온 그녀들이 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114쪽)
그러나 이 책은 또한 미국에서 희망을 완전히 거두어 들이지는 않는다. 경제난 속의 미국은 소비를 벗어난 창조적 삶, 이슬람 등 종교에 대한 진지한 탐구, 청소년들에 거는 기대 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강조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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