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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극단 신기루만화경 '설공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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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극단 신기루만화경 '설공찬전'

입력
2009.0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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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극단이 상설공연할 만한 레퍼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줄거리만으로도 끌리는 매혹적인 이야기성, 웃음이든 눈물이든 시간의 흐름을 견뎌낼 만한 보편적인 감동 요소, 언제고 도전할 만한 선명한 연극성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하물며 그것이 서양 고전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 창고에서 묵히고 곰삭힌 것임에랴. 극단 신기루만화경이 공연 중인 연극 '설공찬전'(이해제 작ㆍ연출)은 2003년 혜화동 1번지 페스티벌 '권력유감' 전에서 초연된 이래 네 번째 공연되는 작품으로, 머잖아 이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한다.

연극 '설공찬전'은 채수의 고전소설 '설공찬전'에서 이야기의 원석을 취한다. 약관의 나이에 장가도 가지 못하고 죽은 공찬의 영은 자신의 불효를 한탄하다 저승사자를 설득, 스무 날의 말미를 얻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이미 육신은 사라졌으니 아쉬운 대로 건달인 사촌동생 공침의 몸을 빌려 입신양명의 못 다한 꿈을 이룰까 하지만 곧은 뜻을 지닌 아비의 반대로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다.

그 와중에 매관매직을 일삼는 정익로 대감과 치매 걸린 그의 노모가 공찬의 집을 방문하고, 이참에 귀신의 영특함을 빌려 못난 아들에게 관직을 얻어주려는 작은아비 충수의 계략과, 딸의 세자비 간택 추천을 받기 위해 청탁을 넣는 오매당 부인의 야심이 가세하면서 빙의(憑依) 소동은 증폭된다.

기담(奇談)과 판타지 형식에는 당대의 사회적 맥락 속에 읽어낼 수 있는 원망(願望)의 리얼리티가 숨어 있을 터. 죽은 자들이 산 자의 입을 빌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찌 조선시대 사람의 마음뿐이겠는가.

줄 세우기와 이념의 동종교배 속에서 매관매직이 행해지고 권력이 남용되는 세태를 극은 조롱하고 폭로한다. 빙의 소재의 희극적 유희성에 집중해 현실 고발의 힘은 약한 편이지만, 풍자극의 속성 때문인지 관객의 생각은 자꾸만 극장 밖으로 뛰쳐나온다.

시의성은 약하더라도 쓰디쓴 현실을 감싼 '웃음'이라는 당의정 효과만큼은 강력하다. 파락호 '공침'에서 반듯한 혼령 '공찬'으로 순식간에 덮어쓴 빙의의 순간을 연기하는 정재성과 어미 등쌀에 내훈을 달달 외며 간택용 인형 되기를 마다않는 김은희(규수 윤서임 역)의 능청스러운 표정이 무릎을 치게 한다.

모처럼 귀를 열고 듣고 싶어지는 말맛 넘치는 대사 또한 일품이다. 다만 일부 대사가 연기 흥에 묻히는 탓인지 객석으로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2월 8일까지 대학로 정보소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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