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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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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부시

입력
2009.02.0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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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권력자가 전임자와 다르게 보이려 하는 것은 본능인 것 같다. 전임자가 잘났건 못났건 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가 유세 중 끊임없이 '변화'를 외쳤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어떠할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렇더라도 그의 '탈 부시'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현기증 날 정도의 '부시 지우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정책을 바꾼 것 중 몇 가지만 들어보자. '테러와의 전쟁'의 상징인 관타나모 수용소와 중앙정보국(CIA)의 해외 비밀감옥을 폐쇄하도록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번번이 반대했던 '임금차별 금지 법안'을 취임 후 1호 법안으로 서명, 발효시켰다. 부시 정부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탄산가스 배출 규제, 고연비 차량 개발 등 환경 관련 법안도 우선 순위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던 저소득층을 위한 어린이건강보험 확대 법안도 지난달 말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속에 상하 양원을 통과했다. 취임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았지만, 밀린 숙제 하듯 쏟아낸 반 부시 정책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오죽했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출근 옷차림을 자유롭게 바꾼 것을 두고, 정장 스타일을 고집했던 부시 대통령과 비교하며 또 다른 '부시 지우기'라고 평했을까.

전임자의 정책을 뒤집는 것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잘못된 정책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청산'이 무조건적인 '전임 정권 부정'으로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정권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독선이 끼치는 해악은 엄청나다. 명분상 옳은 일이라도 현실과 이상은 다를 수 있다. 현실정책은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부시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는 '변화'를 내세웠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을 모두 뒤집는다 해서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말이 나왔다. 부시가 비교적 높은 인기 속에 퇴임한 클린턴 정부를 부정하느라 정치적 부담을 감내했던 것과 달리 오바마는 부시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물러나준 '덕분'에 부담이 적다는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이런 행운 말고도 오바마에게는 부시가 갖지 못한 덕목이 많다. '소통'의 자세가 대표적이다. 부시가 의회를 무시하고, '네오콘'이라는 분리주의자들에 함몰된 것과 달리 오바마는 70%가 넘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공화당에 '낮은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국정 방향을 일일이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하는가 하면 대선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던 외교안보분야에서조차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견해를 경청하고 있다.

부정 일변도보다 극복 노력을

오바마의 이런 모습을 뉴욕타임스는 '열렬한 구애(fervent courtship)'라고 표현했다. 오바마는 후보시절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그릴 수 있는 백지 스크린'으로 자신을 비유한 적이 있다.

귀를 닫았던 부시와 달리 오바마가 귀를 활짝 열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독선의 궤변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AP통신은 "전임자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또 다른 편협함에 구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실책이 오바마 정부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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