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십장생(十長生) 그림 중 제작 시기와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십장생병풍이 처음 확인됐다. 고려 말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십장생도는 조선시대 궁중의 혼례와 회갑연 등에 사용된 궁중장식화였으며, 조선 후기 이후에는 민화로도 널리 그려졌다. 그러나 화원들이 공동 제작한 궁중장식화는 서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대와 목적 등을 알기 힘들었다.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간된 국립고궁박물관 학술지 '고궁문화'에 기고한 논문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를 통해 "미국 오리건대 소장 십장생병풍 중 그림 제작에 관련된 관직과 이름을 기록한 좌목(座目)을 '승정원일기'의 관직명과 비교한 결과 이 병풍이 순종(1874~1926)이 왕세자 시절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된 것을 기념해 1880년 제작된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병풍은 1924년 당시 경성부에 있던 무역상 테일러상회에 의해 미국으로 판매된 것이다.
가로 520.7㎝ 세로 201.9㎝ 크기에 10첩인 이 병풍의 8첩에는 청록산수 기법의 십장생도가 그려져 있으며, 나머지 2첩에 좌목이 있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원 등 좌목에 나오는 14명의 관원은 고종 16년인 1879년 12월, 왕세자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을 때 진료에 참여했던 의약청의 구성원으로,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승진 내역과 좌목의 관직명을 비교해보면 1880년 4~11월 병풍 제작이 완료됐음을 알 수 있다.
박씨는 "십장생도는 지금껏 왕실과 민간의 것을 불문하고 구체적 제작 배경이 알려진 사례가 없는데 이 병풍의 경우 독특하게 좌목이 있었기에 추적이 가능했다"며 "궁중장식화의 양식 비교와 연대 추정에 중요한 기준작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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