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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컴퍼트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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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컴퍼트 존

입력
2009.02.0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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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엽기적 살인행각은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끔찍한 범죄로 치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ㆍ반 사회적 성격장애인)의 위험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전문가들은 그를 1999~2000년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부유층 9명을 살해한 정두영, 2003~2004년 부녀자를 중심으로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에 이은 전형적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사이코패스는 ‘사이코’ 특유의 어감 때문에 정신병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무관하다. 범죄만 빼면 이상징후를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 모습이다.

■사이코패스가 던지는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식별 불가능성이다. 범인이 잡히고 나면 일반인도 그가 사이코패스임을 쉽사리 알아챌 수 있지만, 전문가조차 사전에 그를 가려내어 필요한 안전 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1920년대 독일의 슈나이더가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래 잇따른 유형화 작업도 통계적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정신병질인 ‘사이코패시’는 내면에 잠복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사이코패시 자체도 사이코패스의 행동분석을 집적한 결과 얻어진 사후 설명용에 가깝게 여겨진다.

■이들의 범행은 냉정하고, 합리적이고,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완전범죄에 가까워 수사당국의 압박이 늦어지다 보니 연쇄살인처럼 장기ㆍ연속 범죄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범죄수법도 진화하고, 행동 반경도 넓어진다. 그 동안의 사이코패스 범죄가 대개 범인의 생활 근거지 주변에 한정된 것만도 다행스럽다. 행동반경이 크게 넓어지기라도 했다면 범죄 피해와 수사의 어려움이 한결 클 뻔했다. 강호순의 범행은 대부분 축사를 중심으로 반경 5㎞ 안에서 이뤄졌다. 그가 비교적 안심하고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여긴 범위였던 셈이다.

■특정 행위를 불안 없이 행할 수 있는 이 심리적 공간 한계가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컴퍼트 존(Comfort Zone)’이다. 이 ‘안심 구역’은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도 하고자 하는 행동 종류에 따라 다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쉽게 이 경계선을 넘는 반면 보통사람은 자신의 컴퍼트 존 안에서 새로운 행동을 시험하고, 그에 대한 반응까지 경험하고서야 조금씩 범위를 넓혀 나간다. 되도록 이를 넓혀 나가도록 권하고 싶지만, 사이코패스만은 예외다. 오히려 그들의 컴퍼트 존을 점으로 압축할 방안을 찾으려고 사회가 머리를 싸매야 할 때다.

황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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