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어머니와 외삼촌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 생각이 났다. 죽은 외삼촌이 평소 누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사람. 가족들도 다 알고 지내, 길에서 우리를 보면 과자를 사주고 어머니가 아플 때면 귤 한 봉지를 사서 뛰어왔다. 전화를 하지 않은 지 벌써 사오 년은 흘렀다고 어머니는 안부를 묻는 일조차 주저한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떡하나, 혼자 며칠 끙끙 앓을 일이 무서운 것이다.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긴 신호음 끝에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는 탄성을 질렀다.
떡국거리와 과일을 챙겨 허겁지겁 주소를 물어 찾아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비좁은 골목에서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파가 나왔다. 내 이름을 다정히 부르며 과자를 쥐어주던 깊숙한 눈은 그대로였다. 죽기 전에 자네를 보는구나, 할머니도 울고 어머니도 울었다. 정부 보조금 35만원으로 월세 10만원 내고 가스 사서 불도 땐다며 따뜻한 곳으로 우리를 앉혔다.
봉사자들이 밥도 주고 목욕도 시켜준다고 했다. 누군가 가져다준 떡국 한 그릇이 식은 채 놓여 있었다. 올해 여든다섯, 혼자 잠들고 눈뜨는 그 긴 시간을 나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어머니는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문을 닫으려는데 조금 열린 문틈으로 깊숙한 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전화 좀 줘, 전화 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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