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기업 구조조정이 제2라운드에 돌입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설 연휴 이전에 1차로 111개 건설ㆍ조선사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끝마친 데 이어, 이제부터는 나머지 건설ㆍ조선사 및 해운ㆍ자동차부품 등 타업종, 그리고 대기업에까지 구조조정의 칼끝을 겨눌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칼날이 무뎌도 너무 무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 알려진 부실정도에 비해 워크아웃 및 퇴출 판정을 받은 업체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칼자루를 함께 쥔 은행과 정부의 갈등도 해소될 기미가 없어 향후 구조조정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기침체를 최소의 희생으로 건너기 위해서는 부실기업에 대한 신속한 정리가 필요하다”며 “결국 정부가 꼼짝달싹 않는 은행을 움직이게 할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미덥지 않은 1차 평가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최근 시공능력 상위 100위권의 92개 건설사와 19개 중소 조선사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대주건설과 C&중공업을 퇴출 대상인 D등급, 건설사 11곳과 조선사 3곳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C등급으로 분류했다. 즉 평가대상의 약 85%는 문제가 없거나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평가다.
애초에는 퇴출 업체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부가 은행을 압박해 그나마 C, D등급 수가 늘어난 것. 그러나 시장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만일 채권은행의 이번 평가가 정확하다면 은행이 그 동안 왜 돈을 묶어두고 기업 자금지원을 망설였는지 궁금하다”며 “결국 이번 평가는 자신(은행)이 투자한 업체를 보호할 수밖에 없는 ‘제식구 감싸기’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부실기업이 늘어나면 은행 건전성과 순이익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해당기업이 거센 반발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은행의 자율 구조조정 작업은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는 은행 자율을 외치고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압력을 가하는 정부 태도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등급 분류 마감을 앞두고 A, B 등급으로 분류한 기업이 부도날 경우 해당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실제 C, D등급 업체 수를 막판에 조정한 것도 정부 입김이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차라리 정부가 직접 나서 부실기업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까지 얘기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채권은행과 기업간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무 자르듯 자르고 속도를 내라고만 한다”며 “은행은 10년 전과 달리 외국인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해법은 없나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부터 10년 전처럼 직접 나서 칼을 휘두르는 ‘관치식 해법’을 택할지, 아니면 은행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도록 독려하는 ‘시장식 해법’을 밀고 나갈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장자율에 따른 해법으로는 은행에 구조조정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에 구조조정 인센티브를 줘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단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은행에 대해 손실 일부를 자본확충펀드로 ‘조건 없이’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세금으로 마련한 정부자금을 은행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나, 손실전액을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확충펀드의 취지도 살리고 구조조정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계기업이 무너지면 은행의 손실로 잡히기 때문에 은행들은 구조조정을 꺼리고, 정부는 전체 경제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구조조정 작업이 늦어지면 결국 경제회복도 늦어진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