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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원천차단 '셉티드' 확산/ 우리가 다 보고 있다, 꼼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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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원천차단 '셉티드' 확산/ 우리가 다 보고 있다, 꼼짝마!

입력
2009.01.2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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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울창한 도심 아파트 안의 공원. 쾌적함의 상징처럼 비쳐지는 그 곳에 오히려 범죄가 숨어있을 수 있다. 160cm 안팎 높이에서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강ㆍ절도 등 범행에 '가림막'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입주를 마친 서울 장안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설계 당시부터 이런 점을 고려해 눈주목, 진달래, 철쭉 같은 키 작은 관목과 2m 아래로는 가지를 뻗지 않는 소나무, 감나무 등 키 큰 수목을 조경수로 택했다. 나무로 인한 사각지대를 없애 '공동 감시' 효과를 높인 것이다.

과학으로 범죄를 막으려는 시도, 일명 셉티드(CPTED) 기법이 건축물 및 도시 설계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경보장치나 CC(폐쇄회로)TV 등 전자장치를 곳곳에 설치하고, 지하주차장 기둥을 사각형 대신 둥글게 설계해 사각지역을 최소화하는 것 등이다.

밀어서는 열리지 않고 당겨야만 열 수 있는 은행 출입문도 강도가 도망갈 때 도주를 지체시킬 수 있는 셉티드 기법의 하나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는 야간 시야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는 여느 아파트처럼 밝은 조명을 10m 이상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설치하는 대신, 밝기를 좀 낮추더라도 간격을 5m 이내로 좁혔다. 야간에 짙은 그늘로 인한 범죄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또 나무 때문에 그늘이 지는 부분에는 바닥에 간접 조명을 설치했다.

범죄 다발 공간인 지하주차장 설계에서도 셉티드가 각광 받는다. H건설은 최근 범죄 예방을 위한 지하주차장 조명시스템을 개발해 아파트 건설 현장에 적용키로 했다.

차와 사람이 감지된 곳의 반경 10m에서는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최대 밝기로 켜지고, 인근 구역은 50% 내외, 이용자가 없는 구역은 5~10%로 밝기가 자동 조절되는 시스템이다. H건설 관계자는 "사람이나 차가 지나는 구역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범죄 의도를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H건설은 또 충남 당진에 신축 중인 아파트에도 도둑이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관에 폭 12cm 정도의 사각형 덮개를 씌우고, 1ㆍ2층에는 창문에 적외선 감지기를 다는 등 곳곳에 셉티드 개념을 적극 도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셉티드 기법이 실제 범죄 예방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이민식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지난해 8월 <치안논총> 에 발표한 'CPTED의 효과분석 연구'에 따르면, 방범창 설치 같은 일견 사소해 보이는 조치도 실제 범죄 발생율을 낮추는데 상당히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와 경찰은 2006년 상반기 경기 부천시 일부 지역에 셉티드를 시범 적용, 나무가 불빛을 가리지 않도록 가로등을 옮기고, 건물 1~2층에 방범창을 설치하고, 동사무소와 협력해 골목길 청소, 범죄 예방 홍보활동 등을 벌였다.

그 결과 셉티드 도입 이후 2007년 6~7월 조사에서 최근 3개월 간 아리랑치기 등 노상절도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피해율)은 2005년 같은 기간에 조사한 수치보다 8% 포인트 감소했고, 침입강도 피해율도 3.1% 포인트 줄었다.

이처럼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셉티드의 확산이 범죄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현호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셉티드는 건축물을 넘어 도시계획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서 "현재 국내에서는 경비회사, 건설회사 등 일부 민간업체 위주로 도입되고 있는데, 선진국에서처럼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부처, 경찰이 머리를 맞대고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셉티드

미국의 도시설계학자 레이 제프리가 1971년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ㆍCPTED)이란 논문에서 도시설계와 범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1980년대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 정착됐다. 영국에서는 1998년 '범죄와 무질서법'에 의해 구체화됐다. 실제로 1999년 요크셔 지역에서 셉티드를 도입한 주택의 경우 그렇지 않은 일반 주택에 비해 침입절도 피해율이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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