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화(33ㆍ사진)씨가 1970년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한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56)씨를 만난 건 의류업체를 경영하며 한창 돈 잘 벌고 있던 작년 초였다. 연세대 영문학과 95학번인 김씨는 2000년 벤처 붐을 타고 IT기업에 취직했고, 2001년부터 인터넷포털 다음에서 일했다. 2006년 의류사업을 시작했는데, 연예인들에게 이 옷이 알려지면서 압구정동과 명동에도 매장을 열었다. 그러나 김씨의 고민은 깊어 갔다. “보람이 없었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나는 퇴보하는 것 같았죠.”
김씨가 전씨를 만난 게 바로 이때였다. 이들은 이내 의기투합해 의류제조업체 ‘참 신나는 옷’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전씨가 사장, 김씨가 부사장을 맡고 NHN 등에 근무하던 김씨의 대학 후배 6명이 합류했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바로 그 봉제공장을 만들기 위해서 였다. 8시간 노동하며 교사들을 고용해 직공들 교육도 시키는, 신나는 일터를 40년 만에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회사 정관에 이익의 3분의 2는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 3분의 1 가운데 일부는 재투자, 또 일부는 근로자들에게 분배하도록 못박았다. 이곳 30여명 직원들은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시다’라고 불리는 보조 봉제사들도 다른 봉제공장 수십 년 경력의 봉제사들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물론 이곳도 기업이기 때문에 돈 많이 버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지속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다. 공장을 가동한 지 석 달여 동안 올린 매출은 4억여 원. 유니폼 주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천연소재로 만든 옷감에 천연 염색을 한 옷이라는 점이 점차 알려지면 인건비 등 기본경비를 제하고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승산 있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욕망을 제한하고 베풀기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수익도 내면서 개개인의 사회적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겁니다.” 김씨와 그의 후배들은 대략 3,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물론 많은 것은 아니다. 김씨 후배들은 최소 1,000만원씩 깎여서 이 곳으로 옮겼다. 김씨는 그러나 “다들 깎인 월급은 삶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 하며 재테크에 인생 전부를 바치기보다, 늙을 때까지 즐겁고 의미 있게 이 곳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 회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만간 ‘수다랩’이라는 사회적 기업 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이다. “경쟁이 조직을 다이나믹하게 할 것 같지만, 경쟁은 자기자신을 보호하게 만들고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협력의 비즈니스 모델을 놓치게 합니다. 오히려 경쟁에 올인하지 않는 조직이 생동감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회적 기업인 것이죠.”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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