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과 귀경에 아무리 바빠도 영화 한 편은 봐야 명절 기분이 나기 마련. 설 연휴 정취가 가득 묻어나는 영화들은 없지만, 올해 극장가도 푸짐한 상차림으로 관객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영화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한영화'씨와 '국장가'씨의 가상대화로 설 연휴 극장가를 살펴봤다.
한영화-설 연휴 개봉하는 한국영화는 '유감스러운 도시' 하나 뿐이야. 충무로가 불황은 불황인가 봐. 대목 중에 대목이라는 설을 이렇게 비껴가다니.
국장가-불황 탓도 있지만 지난해 설 연휴 때 '원스어폰어타임'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 한국영화 6편이 출혈경쟁하다 별다른 재미를 못 봤잖아. 오히려 연휴 직후 홀로 개봉한 '추격자'가 대박을 쳤던 점이 영향을 준 듯 해.
한영화-'유감스러운 도시'는 좀 유감스럽더군.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기엔 좀 민망해. 남성 성기와 관련된 유머도 지나치고, 폭력의 강도도 의외로 세단 말이야. '조폭 마누라'와 '가문의 영광'시리즈가 '명절=조폭 코미디'라는 공식을 만들어냈지만 올해 설은 어떨지 몰라.
국장가-흥행코드가 바뀌었다지만 아무래도 명절 땐 코미디가 먹히지. 꼭 가족들 손잡고 영화 보는 관객만 있나. 마음에 맞는 친구랑 2시간 가량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것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으로 구성된 '정트리오'가 예전보다 덜 웃기는 건 유감이야.
한영화-코미디로는 아담 샌들러 주연의 '베드타임스토리'가 다크호스가 될 듯 해. 잠자리에 든 아이들한테 해주는 이야기가 다음날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설정이 일단 재미있어. 이미 정평이 난 샌들러의 코믹 연기도 나쁘지 않고.
국장가-글쎄. 판타지도 아니고, 코미디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인데다 내용이 너무 황당해. 윽박지르듯 오버하는 샌들러의 코믹 연기도 너무 진부해. 하지만 가족들이 보기엔 가장 무난한 영화일 듯해.
한영화-고전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다룬 '적벽대전2:최후의 결전'은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 1편에 대한 관객들 반응이 좀 심드렁했잖아. 그런데 조조의 함대가 불 타오르는 장면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스펙터클이야.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으면 물리잖아. 후반부 40여분 가량의 전투장면이 좀 지겹기도 해.
국장가-오랜만에 설에 만나는 '홍콩영화'라 그런지 기대가 커. 아아! 알아 알아. 한국과 일본, 홍콩이 돈을 댄 중국영화라는 사실. 하지만 우위썬(吳宇森) 감독 때문인지 홍콩영화에 대한 향수가 떠올라. 명절하면 청룽(成龍), 리롄제(李連杰) 같은 스타가 주연했던 홍콩영화를 떠올리던 때가 있었잖아.
한영화-톰 크루즈가 주연한 '작전명 발키리'는 무늬만 블록버스터인 듯해. 격한 전투 장면을 많이 바랐는데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지더군.
국장가-'작전명 발키리'에서 스펙터클을 기대한 자체가 애당초 무리지. 히틀러 암살 시도 뒤 사람들이 어디에 줄을 서야 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장면이 오히려 긴장감을 주는 영화야.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내공은 여전히 만만치 않아.
한영화-완성도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체인질링'도 빼놓을 수 없지. 실종된 아들대신 다른 아이를 찾아다 준 비리 경찰에 항거하는 엄마 역의 안젤리나 졸리 연기도 일품이야.
국장가-절대동감이야. 하지만 아이 잃은 졸리의 연기가 너무나 슬퍼. 웃고 떠들어도 시간이 모자랄 명절에 가슴을 헤집는 영화는 좀 꺼려지긴 해.
한영화-개봉 영화가 적진 않지만 설 차림표 치곤 어딘지 허전해. 달리 볼 영화 없나. TV보면서 방바닥만 긁을 수는 없잖아.
국장가-흥행 쌍끌이 중인 '쌍화점'이나 '과속스캔들'을 봐도 괜찮지. 바쁘다는 핑계로 못 본 사람들이라면 명절이 제격이지. '쌍화점'도 완성도가 꽤 있는 흥행영화지만 아무래도 가족영화 성격이 강한 '과속스캔들'이 명절에도 강세를 보일 것 같아.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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