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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유씨씨, 미네르바, 우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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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유씨씨, 미네르바, 우리의 운명

입력
2009.01.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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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의 제목인 유씨씨는 'User Created Contents', 즉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콘텐츠라는 뜻이다. 유씨씨 스토리 텔링의 핵심은 소박주의와 상호텍스트 성이다. 소박주의에서는 단순하고 서툰 것이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효리가 아닌 어느 뚱뚱한 여학생이 남루한 옥탑방에서 이효리의 춤을 흉내내는 것이다.

상호텍스트 성은 일단 만들어진 작품이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다시 수정되고 보완되는 것을 말한다. 한 청년이 걸레 자루로 스타워스의 광선검 결투 장면을 흉내낸 유씨씨는 전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의해 덧붙여지고 재창작되었다.

'집단 지성'시대로의 진화

유씨씨는 거대 미디어의 콘텐츠에도 거꾸로 영향을 주고 있다. 유씨씨를 흉내낸 광고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이다. 패밀리가 무한한 도전을 하러 1박2일을 보내는 내용의 TV 연예인 서바이벌 오락프로그램도 그 소박한 배경과 촬영의 방식에서 유씨씨의 미학과 교류한다. 뚱뚱한 여중생은 이효리를 모방했지만 이효리는 다시 그 뚱뚱한 여중생을 모방하고 있다. 매체의 명칭이 그 표현의 형태나 결과가 아닌 제작의 과정으로 규정되는 것도 새로운 것이다.

소설은 작은 이야기이고, 회화는 그려진 그림, 영화는 그림을 비추는 것인데 반해 유씨씨는 사용자가 만드는 콘텐츠이다. 유씨씨로 상징되는 시대는 결과보다 과정의 시대이다. 창작자와 수용자의 경계가 없어지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도 없어진다. 거대 미디어보다 인터넷 상에 수도 없이 존재하는 개인 미디어들이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는 시대이다. 경제전문가 크리스 앤더슨이 얘기하는, 무한한 생산자와 무한한 소비자가 웹상에서 교류하는 롱테일의 시대이고, 미래학자 피에르 레비가 얘기하는 집단 지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피에르 레비에 의하면 지금의 변화는 단지 변화가 아니다. 수억 년을 달려온 인류가 맞이한 진화의 또 다른 단계이다. 역사 이전에 친족과 혈연 동맹 중심의 인간은 이름으로 규정되었다. 신석기에 이르러 농경과 정착이 시작되면서 사는 곳, 즉 주소로 규정되기 시작했으면 16세기 상품의 공간이 열리면서 직업으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지금 21 세기에 인류학적 진화의 네 번째 단계인 '집단 지성의 공간" 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웹과 디지털 통신 기술로 무장한 인류는 이제 한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쌓이는 집단 지성으로 진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라면 자신들의 영속을 위해 인간이라는 개체를 끊임없이 진화시켜 온 이기적 유전자들은 이제 집단 지성이라는 또 하나의 진화를 완성시켜 지구라는 고독한 별에 찾아온 종(種)의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유씨씨였다. 학력과 배경은 그 자체로 소박주의였으며 그 스스로 짜깁기한 정보들이 사람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보완된다는 의미에서 상호 텍스트적이었다. 그의 글이 몰고 온 반향은 개인 미디어가 어떻게 거대 미디어 못지않은 영향력을 갖게 되는지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창작자와 수용자,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보여주었다.

새로운 세기의 운명적 현상

혹은 그는 집단 지성이었다. 이름도 없는 익명의 공간에서 주소도 직업도 없이, 인류가 개발시켜온 이력서의 모든 항목들을 철저히 무시하며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권위를 키우고, 리플과 펌으로 덧붙여지고 재해석되던 집단 지성이라는 현상이었다. 그 현상을 만들었다는 사람이 구속됐다. 자신들이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7명의, 말 그대로 '집단 지성'도 나타났다.

그들이 누군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의 운명이다. 지구라는 고독한 별에서, 그 중에서도 대륙의 끝 어느 변두리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몫의 진화, 그것의 운명인 것이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 ·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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