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도서관에서 낭독회가 끝났을 때였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참가자 대부분이 아이들 밥 챙기고 나온 주부들이라 그는 한눈에 띄었다. 그가 우물쭈물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뜻밖에도 내 첫 책이었다. 책 속표지에 10년 전 내가 그에게 해주었다는 사인이 들어 있었다. 10년 전 그는 제대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서점에 들렀다. 한참 신인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사인회라는 것을 하면서 어리둥절해 있었다.
제대를 축하한다는 그 글씨들은 오래전 벗어둔 옷가지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치기와 열정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10년이 지나도 선생님은 계속 글을 쓰고 있는데 나는 그때와 바뀐 게 없네요, 라며 그는 미안한 듯 웃었다. 요모조모 뜯어보았지만 10년 전 보았다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동안 조금 살집이 붙었을 테고 제대를 하던 때의 그 패기만만함도 줄었을 것이다. 10년 전 흥분해서 날려쓴 문장 아래, 10년 뒤 우리 또 만나요, 라고 또박또박 쓰면서 나는 내 삼십대와 작별했다. 10년 전에도 나와 그는 이렇게 이런 자세로 짧은 시간 스치듯 만나 헤어졌을 것이다. 10년 뒤면 그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될 것이다. 바뀐 게 없다지만 그는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였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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