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연설은 기대한 것에 비해 그다지 명연설은 아닌성 싶다. 이런저런 논평을 두루 살펴보아도 "감동적"이라는 평가는 없는 듯하다. 다만 연설문은 길이 남을 명문이 아니어도 연설 자체는 역시 뛰어났다. 으뜸가는 명연설로 꼽는 케네디의 취임사를 직접 쓴 테드 소렌슨은 "연설(delivery)은 훌륭했다"며 "매우 힘이 있고, 속도 조절을 아주 잘했다(well paced)"고 평가했다. '위대한 연설문'을 쓴 이라 칭찬에 인색할 수 있지만, 정확한 평가라고 본다.
■사실 오바마 연설을 들으며 너무 빠르지 않나 생각했다. 위엄 있는 어조로 중간중간 박수 때 쉬어가는 여느 취임 연설과 다른 듯했다. 우리 TV의 동시통역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영어 오디오를 듣는 데 방해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오바마 연설을 세밀히 뜯어본 외국 언론의 전문가들은 용의주도하게 계산된 '사려 깊은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감동적인 화려한 수사를 절제한 것은 국가 위기의 심각성과 벅찬 과제를 일깨우기 위한 고려로 보았다. 전임 부시 대통령의 잘못을 단호하게 비판하며 미국의 총체적 혁신(remake)을 강조하기 위해 언뜻 마음을 무겁게 하는(downbeat) 말을 많이 했다는 풀이다.
■물론 어두운 현실 진단은 곧장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는(upbeat) 대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제나저제나 박수칠 때를 기다리던 청중이 감동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이내 냉정한 톤으로 연설을 계속했다.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심정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드넓은 광장에 모인 수백만 군중의 환호와 박수 때문에 심각하고 진지한 연설의 맥이 수시로 끊기는 것을 피하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애초 17분 길이로 알려진 연설이 실제 18분30초 걸린 것에 비춰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오바마의 연설은 언뜻 큰 틀의 원칙을 제시하는 데 머물렀다. 또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상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급진적인 개혁 의지를 천명했다는 평가다. "큰 정부ㆍ작은 정부 논란은 쓸모없다"거나, "회의론자(공화당)들은 지각 변동을 깨달아야 한다"거나, "시장의 일탈에 대한 규제 없이 번영은 없다"고 강조한 것 등이 그렇다. 대외 정책에서도 '강ㆍ온' 양면 노선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는 겉보기에 특유의 '실용과 균형'을 중시한 연설을 통해 미국의 '역사적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도 좀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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