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젠 낙동강 물은 정수기로 걸러도 믿을 수가 없심더. 펄펄 끓여 묵는기 상책이지예." 대구 매곡정수장 수돗물의 1,4-다이옥산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먹는물 권고치인 50㎍/L을 넘어선 지 하루가 지난 21일, 주부 공영애(45ㆍ달서구 상인동)씨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심찮게 터지는 낙동강 식수 오염 사고로 6년 전부터 정수기로 수돗물을 걸러 마시고 있지만, 이마저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 16∼20일 롯데백화점 대구점의 생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대구백화점은 30% 늘었다. 이마트 대구지역 10개점도 같은 기간 생수 판매량이 18% 증가하는 등 생수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팔공산 등 약수터에도 시민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발암의심물질인 1,4-다이옥산이 낙동강 본류는 물론 정수를 거친 수돗물에서도 WHO 권고치 이상 검출되면서 대구와 경남ㆍ북 일부 주민들이 식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1,4-다이옥산은 산업용 용매나 안정제로 쓰이는 무색 액체로, 단기간 노출될 경우 눈과 목, 코에 염증을, 다량 노출되면 신장이나 신경계에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동강에서 1,4-다이옥산이 검출된 것은 12일 오전 6시. 대구와 경북 칠곡, 경남 창녕 지역 주민들의 식수를 취수하는 대구 매곡취수장에서 상류 쪽으로 23㎞ 떨어진 왜관철교 부근 원수(原水)의 1,4-다이옥산 농도가 65.31㎍/L을 기록했다. 4,5일이면 대구에 도착하는 거리여서 대구지방환경청과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 경북도 등에 비상이 걸렸다.
검출 9일째인 20일 오전 6시에는 낙동강 물을 정수하는 대구 매곡정수장의 1,4-다이옥산 농도가 54㎍/L을 기록, 수돗물마저 먹는물 권고치를 벗어났다. 21일에도 오전 6시 현재 54.8㎍/L을 보였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수돗물의 다이옥산 농도가 65㎍/L을 넘을 경우 제한급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 식수대란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물을 끓여 마시라"는 권고만 되풀이 할 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권대용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장은 "물을 5분간 끓이면 1,4-다이옥산의 60%, 10분이면 90%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지난 15일 하루 방류량을 평소보다 50만톤 늘린 안동댐 물이 대구에 도착하는 22, 23일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구태우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낙동강에서 오염 신호가 감지되면 당장 배출업체가 오염원을 버리지 못하게 실질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데, 열흘이 지난 지금도 '물을 끓여 마셔라', '낙동강 방류량이 늘어났으니 기다려보자'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경북도도 20일 뒤늦게 일정 농도 이상 폐수를 모두 위탁처리하고 정기점검 기간을 늘리는 등 대책을 내놓았으나, '뒷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달 30일 1,4-다이옥산의 특정수질유해물질 지정이 예고된 상태인데도, 배출 업체에 대한 제재 수단 등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실제로 다이옥산을 배출하는 구미와 김천 지역 9개 화섬업체에 수차례 오염부하량을 줄이도록 권고했지만, 20일 구미하수종말처리장의 다이옥산 농도는 629㎍/L으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구미처리장에는 다이옥산을 제거할 수 있는 설비조차 없다.
낙동강 식수오염과 대구의 악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3월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페놀원액 30여톤을 낙동강에 유출, 수돗물에서 악취가 발생하면서 대구를 비롯해 낙동강 수계 1,000만명의 주민이 고통을 겪었다. 그 후에도 벤젠과 톨루엔, 1,4-다이옥산, 퍼클로레이트, 페놀 등으로 인한 식수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2007년 4월 취수원을 아예 안동댐 등 낙동강 상류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낙동강 유지수 부족에 따른 자치단체간 물 분쟁 우려와 8,000억원에 이르는 시설비용 부담, 오염개선 실효성 논란 등으로 중도 포기했다.
최영균 대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우선 유해물질 배출 기준 및 위반 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낙동강 하천수에 대한 식수 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수자원을 다양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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