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인 설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안색과 건강을 살펴드릴 수 있는 기회다. 이곳 저곳 편찮으신 부모님 건강을 지켜드리고 싶은 것은 자식들의 공통된 마음. 그런데 정작 부모님이 가장 아픈 곳은 몸 보다는 마음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진료를 받은 김 할머니(72)도 처음 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잘 드시지 못해 기운이 없다는 것이 주요 증상이었다.
근처에 살고 있는 딸이 주사라도 맞으시고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아 병원에 오시고 왔는데 김 할머니는 문진, 정신상태검사, 신경인지검사, 뇌영상 검사를 통해 노인성 우울증으로 진단되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고 4주 후부터는 예전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노인성 우울증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15%에 이르는 매우 흔한 질환이다. 노인에게서 우울이란 기분 그 이상의 것이다. 젊은이들의 우울증과는 달리 노인성 우울증은 슬픈 감정보다는 무기력감이나 의욕저하와 같은 '기력'의 감퇴가 심해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가 어렵고, 치료 받을 힘조차 없을 때도 있다.
특별한 걱정거리가 없는데도 막연히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잠이 안 오고, 소화가 안되며,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는 통증이 지속돼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도 많다.
기억력이나 집중력 등 인지기능의 장애도 흔하기 때문에 치매로 오진돼 엉뚱한 치료를 받기도 한다. 특히 노인성 우울증 환자의 8~50%가 치매로 진행되며, 치매 환자의 10~20%는 심한 우울증을 경험한다.
따라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노인환자도 반드시 자세한 병력 청취와 인지기능검사를 통해 치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매가 우울증으로 오진될 경우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되고, 우울증 치료에 흔히 사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나 안정제로 인해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성 우울증 환자 중에는 온몸이 우울을 호소해도 정작 자신이 우울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가 많고, 설혹 그렇게 느낀다 해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 이도 많아 진단과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질지 못해' 생긴 병이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 세워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노인성 우울증은 심약한 성격의 산물이 아니라 뇌 기능 장애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인성 우울증은 적절한 정신치료와 약물요법을 병행하면 80% 이상 잘 회복되며, 부작용도 거의 없는 예후가 좋은 질환이다.
그러나 노인성 우울증은 노인 자살의 70%를 차지하는 위험 질환이고, 뇌졸중, 치매, 갑상선 질환 등과 같은 다른 노인성 질환의 신호탄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치료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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