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딴 세상이 되어 버렸다. 하루 이틀사이에 아파트값이 무려 2억원이나 올랐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슨 주식투자도 아니고 골동품경매도 아닌데 매물을 내놓았다 거둬들이기를 반복하고, 전화로 호가를 1억~2억원씩 올려대고 있다.
몇 년 전 부동산투기 광풍이 불던 때의 얘기가 아니다. 요 며칠 새 서울 강남 압구정동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풍경이다.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D중개업소. 공인중개사 박모씨는 유리창 게시판에 '급매 다량 보유'라고 써 붙인 종이를 모두 떼어냈다. 박씨는 "19일 (한강변 재건축 층수제한 폐지) 발표 직후 10분도 안돼 2억원 이상씩 올려 부른 매물이 나오는가 하면 기존 매물을 거둬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어제와 오늘은 매수문의와 호가 올린다는 전화를 받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한강변 아파트의 재건축 층고제한을 없애 초고층 개발을 허용한다는 발표에 압구정동과 잠실 일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급매물로 나왔던 매물은 대부분 1억~2억원 이상씩 호가가 뛰며 회수됐고, 예정됐던 계약마저 깨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지역 공인중개업소들 조차 "1월중에 재건축 규제완화가 나올 것이란 말은 돌았지만 층수제한을 없앨 줄은 예상도 못했던 일"이란 반응들이다.
압구정동 B공인 관계자는 "지난주만 해도 10억원 아래던 109㎡(33평)형 아파트가 12억원까지 호가가 올랐다"면서 "주변 아파트 거의 대부분이 면적별로 적게는 1억원, 보통 2억원 정도씩 올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제2롯데월드 개발이란 겹호재를 맞은 잠실 일대도 이번 층수제한 폐지 후 술렁이고 있다. 제2롯데월드 개발 소식으로 이미 한차례 호가가 크게 뛴 탓에 큰 폭의 상승은 없지만 여전히 매물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며, 가격도 강세다. 신천동 신천공인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개발과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장미아파트의 경우 7억원까지 내려갔던 30평대가 8억원선에서 호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1억, 2억, 부르는 값만 뛰었을 뿐 실제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매도ㆍ매수 호가 차만 커져, 거래만 더욱 어렵게 됐다는 지적이다. 압구정동 대영공인 박현석 대표는 "거래도 손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매수자는 몰리는데 집주인들은 죄다 안 판다며 빠져 나가니 한동안 거래는 물 건너 갔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현대아파트 인근 연세공인 이건모 사장은 "지난 주에 매물을 보고 간 사람이 이번 주에 계약을 하겠다고 집주인과 구두 약속도 했는데 갑자기 초고층 재건축 발표가 되면서 없었던 일로 됐다"며 "주변 중개업소들도 원래 예정됐던 대여섯 건 정도의 계약 취소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신천동 잠실공인 이모 실장은 "제2롯데월드나 초고층 재건축이나 모두 주변 아파트값만 올려 정부가 검토중인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선 용적률 제한과 소형평형 의무비율 등 재건축 사업성을 좌우할 관련 규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데다, 땅 면적의 25%를 기부채납해야 하는 조건이어서 최근 호가 급등이 거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잠실동 삼성공인 관계자는 "개발 호재는 분명하지만 사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고, 조합원 분담금이나 기부채납에 따른 사업성 등의 변수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압구정동 부동산뱅크공인 하모 대표는 "압구정 일대가 서울시 계획대로 재건축 되려면 현재 도로도 바꿔야 하는 등 여러 난관이 있을 것"이라며 "최근 호가 급등은 막연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 가치를 대변하는 것인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근의 호가상승이 그대로 굳어질 경우, 강남 일대에 잠복된 부동산기대심리를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강남3구에 대한 부동산투기지역 해제가 이뤄져 규제완화가 과잉유동성과 맞물릴 경우, 의외로 큰 폭발력을 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이현수 인턴기자(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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