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가 드디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미국의 위력을 보여주듯 세계 각국에서 1억 명 이상이 취임식을 지켜보았고, 전문가들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를 쏟아냈다. 취임과정을 통해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정치에서 상징성의 역할이다. 쉽게 말해서 정치의 한 부분은 분명히 대중에게 보여주는 쇼(show)이며, 쇼를 통해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점이다.
'통합의 정치' 실천이 중요
필라델피아에서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입성한 것이나, 링컨이 사용한 성경에 손을 올리고 대통령 선서를 한 것 등은 다분히 미국의 역사적 자산을 승계하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이다. 취임 전날 봉사활동을 매스컴에 과시한 것도 봉사와 책임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사실 취임 전날 대통령 당선자가 한가롭게 벽에 페인트 칠이나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자신이 추구하는 통합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주 유용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상징의 정치는 여기까지다. 취임과 함께 오바마는 현실과 직면하게 됐다. 당장 취임 당일 다우 존스 지수가 4%포인트 하락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잠재적 지도자로 책임보다는 희망을 전달하는 착한 역할이었다면, 현직 대통령은 온갖 문제들과 반대 속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80%라는 역대 최고의 지지도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높은 지지는 반드시 낮아지게 마련이고, 자칫 급속한 지지 감소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선출에 열광한다. 소수자 대통령의 상징성은 크다. 그러나 이례적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새겨보면, 미국의 주류사회와 어떻게 화합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가 남아있다. 그래서 소수자 대통령은 통합의 산물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과제를 지금부터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를 설득하면서 워싱턴 정치의 정체된 문제들을 개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반면에 가장 나쁜 경우는 소수자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단기적 정책 실패로 인해 정책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적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가장 중요한 직책 20개 정도를 살펴보면 10개가 넘는 자리에 여성, 흑인, 아시아계 인재를 선발하였다. 미국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다양성이라고 한다면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국정을 이끈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그 동안 미국을 이끌었던 주류사회의 이념과 정서를 담아내야 정치적 지지가 지속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는 업적에 따른 것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국민들의 평가를 받는 것이라는 점이다.
한ㆍ미 관계 영향 잘 살펴야
18분의 취임연설은 은유보다는 직설적 표현이 주류를 이루었다. 실용적이고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 것이다. 과도한 욕심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책임과 봉사를 요구하는 합의적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원으로서 워싱턴에 입성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 정치인으로서 미국의 새로운 출발을 외칠 수 있을 만큼 과거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우방인 미국이 잘되는 것이 우리에게 바람직하지만, 새벽 늦게까지 미국대통령 취임식을 보고 박수만 치기에는 한미 간의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나하나 짚어보고 대비할 시점이다. 오바마 정치는 이제 우리에게도 현실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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