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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윤증현과 반근착절

입력
2009.01.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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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의 6대 황제 안제(安帝) 시절 낭중(郎中)이었던 우후는 폭도가 현령을 살해하는 등 반란을 일으킨 조가현(朝歌縣)의 현령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최고 실세였던 대장군 등줄의 변방정책에 반대하는 직언을 했다가 밉보여 목숨이 위태로운 험지로 내쳐진 것이다. 친지들은 그의 부임을 걱정했다.

우후는 "안이함을 구하지 않고, 험한 일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의 도리가 아닌가.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피한다면 어디서 예리한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가(志不求易 事不避難 臣之職也 不遇盤根錯節 何以別利器乎)"라고 반문했다. 그는 조가현에 부임해 지략을 발휘해 반란을 평정했다.

험한 일 피하지 않는 소신 관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2007년 8월 초 우후의 '반근착절'을 인용하며 금융감독위원장에서 물러나는 소회를 밝혔다. 카드사태 해결, 18년간 끌어왔던 생보사 상장, 자본시장 칸막이를 없애는 자본시장 통합법 제정, 투기억제를 위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 굵직한 금융현안을 풀어낸 것을 비유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서린 뿌리와 뒤틀린 마디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소신과 원칙을 갖고 해결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윤 내정자가 배짱과 뚝심있는 관료로 평가 받는 것은 그에게 비판적인 정치권 및 시민단체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필요한 일은 특유의 돌파력으로 매듭을 짓는 데서 비롯됐다. 금감위원장 시절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에 돈을 쓰지 못하도록 대못질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면서 금산분리 완화를 강조하다가 참여정부 386 실세들과 갈등을 빚은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는 참여정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연례 행사로 개최한 서울금융국제컨퍼런스에 금융기관 수장으로서 두 차례나 참석해 기조연설했다.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이 참여정부와 코드를 맞추느라 한나라당 서울시 행사에 불참한 것과 대조적인 소신 행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과 금융회사에 군림해온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에 대해 더욱 반감을 갖게 된 것은 재경부 고위 관료들이 이 회의에 불참한 것도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금융계의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장을 맡은 윤 내정자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부처간 불협화음을 없애고, 시장 불신도 제거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후배 관료들로부터 '따거'(大哥ㆍ중국말로 형님을 뜻함)로 불릴 정도로 강한 보스 기질과 추진력, 웬만한 비판에는 흔들리지 않는 맷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기 강만수 경제팀장에 망령처럼 따라다닌 독불장군, 올드보이 등 부정적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윤 내정자와 호흡을 맞출 진동수 금융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은 재무부 금융라인에서 한 솥밥을 먹은 후배들이다. 2기 경제팀은 원만한 팀플레이를 바탕으로 경제위기 돌파에 매진할 수 있는 기반은 갖춘 셈이다. 이들 3인방은 영광보다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연초부터 본격화할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 등 피를 묻히는 험한 일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대응 드림팀이 짜여졌다는 후한 평가에 안주해선 안 된다. 나라곳간을 지켰던 금융라인은 역대로 산업합리화와 금융위기 수습을 주도하면서 부실기업과 금융회사를 퇴출시키고, 매각하는 악역을 맡았다가 상당수가 고초를 겪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둡기 전에 크레바스 건너야

윤 내정자는 원 포인트 구원투수의 한계를 갖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외환시장 안정과 극심한 신용경색 해소,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헛발질하거나, 사후 책임을 우려해 지공작전을 펼친다면 그가 쌓아온 신뢰는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강조했듯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크레바스를 건너도록 속도전과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1기 경제팀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책의 일관성, 부처 간 팀플레이와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극심한 불황과 실직 등으로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줘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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