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경제학자의 신간 한 권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로 수십 년 동안 시장만능주의를 믿어 의심치 않은 그가 책에서 규제완화와 자유경쟁, 글로벌 스탠더드를 비판하며 '참회'의 글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왜 스스로 붕괴했는가> (슈에이샤 인터내셔널 발행)라는 이 책은 지난달 출간 이후 한 달 만에 10만부가 넘게 팔렸다. 자본주의는>
저자는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巖ㆍ67) 미쓰비시(三菱)UFJ 리서치&컨설팅 이사장. 거시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을 졸업한 뒤 1970년대 초 하버드대학원에 유학해 강사까지 지내고 돌아왔다.
귀국 후 오사카(大阪)대학, 히토쓰바시대학 교수를 지낸 그는 1990년대 후반 오부치 게이조 내각의 총리 자문기관인 경제전략회의의 의장대리를 맡아 규제완화, 비정규직 노동자 파견 자유화, 의료 경쟁원리 도입, 소득세 최고 세율 인하 등을 제언해 고이즈미 개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권의 국제자문위원에 임명된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게이오(慶應)대학 교수도 이 회의의 일원이었다가 뒤에 고이즈미 개혁의 선봉에 섰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세계경제를 활성화하는 비장의 카드이면서 동시에 세계경제의 불안정화, 소득과 부의 격차 확대, 지구환경파괴 등 인간사회에 숱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주범이기도 하다. 글로벌 자본이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이 경향은 더 커진다.'
나카타니 이사장은 21세기 세계는 글로벌 자본이라는 괴물에 더 큰 자유를 부여할지, 제동을 걸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며 글로벌 자본주의는 이미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며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시장을 추구할수록 단기적으로는 경제가 활성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본주의를 불안정화 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개혁은 필요하지만 그 개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며 시장과 경쟁의 원리를 중시하며 작은 정부를 지향한 구조개혁이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고이즈미의 개혁이 결국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안심하고 안전해야 할 일본의 의료 및 식품유통 체계를 붕괴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필요한 공공사업에 우편예금을 투입하는 재정투융자제도에 쐐기를 박았다'며 우정민영화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효율성만 중시해 '시골 사람에게 사랑 받아온 작은 우체국을,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 닫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고 되물었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홀렸던 지난 세월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참회의 글'이라고 한 책 끝에서 그는 구체적인 정책 제언과 함께 일본 재생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 개입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회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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