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일제의 앞잡이로 조선을 정탐한 혼마 큐스케란 자가 1894년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 <조선잡기> 에 '싸움'이란 짧은 글이 있다. 내용을 더 간추리면 이렇다. 조선잡기>
"조선에서 싸우는 모습은 한심하다. 작은 일로 거품을 물고 다투는 것도 잠시, 말이 격해지면 서로 상투를 잡아 당긴다. 마지막은 언제나 옷이 찢어진다. 그러면 갓 값을 물어내라고 한다. 항상 눈 앞의 손해에 대한 요구를 강요하는 것으로 끝낸다. 어찌 화친하여 서로 갓을 벗을 여유가 없는가. 저 무사태평한 마음을 알뿐, 이 것이 국운이 막힐 징조이다"
변화의 근본은 미국민의 선택
우리 시각으로 내일 새벽, 새 대통령 오바마의 취임을 앞둔 미국은 새로운 출발과 변화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희망찬 모습을 전하는 기사를 읽다가, 엉뚱하게 지난해 건성 읽은 일제 정탐꾼의 조선견문기가 생각났다.
요망스럽다고 나무랄지 모른다. 그러나 오바마와 미국인들이 140여년 전 남북으로 분열된 나라를 통합으로 이끈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기억을 열심히 되새기는 것에 비춰보면, 한 세기 전 일본인이 나름대로 관찰한 우리 선조의 모습을 교훈 삼아 살피는 것도 망령되진 않을 것이다. 나라와 세상 형편은 아랑곳 없이 작은 이해를 다투는 싸움에 골몰하는 우리의 모습이 국운이 기울던 때의 '무사태평'과 아주 다를까 싶은 것이다.
오바마는 링컨을 본받아 필라델피아 발 '통합의 열차'를 타고 17일 워싱턴에 당도했다. 230여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을 선언한 필라델피아에서 그는 "이념과 아집, 편견, 편협함을 버리고 새로운 독립선언을 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워싱턴 링컨 기념관 앞에서 열린 축하공연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주제를 되풀이 외쳤다. 또 "미국은 붉은 나라, 푸른 나라가 아니라 미 합중국"이라고 일깨웠다. 붉은 코끼리가 상징인 공화당과 푸른 당나귀 민주당으로 갈려, 반목과 대립을 지속한 과거를 청산할 것을 호소한 것이다.
공연이 열린 내셔널 몰 '거울못' 주변에는 멀리 알래스카에서까지 날아온 50만 군중이 모였다. 이들은 'Born in the U.S.A'의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비롯해 던젤 워싱턴, 톰 행크스, 보노, 비욘세, 본 조비, U2, 스티비 원더, 타이거 우즈 등 대중 스타들과 함께 '변화와 희망, 관용과 사랑'을 노래하며 하나가 되는 감격을 누렸다.
독일의 한 신문은 "오바마 집권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날려보낸 날"이라고 규정했다. 본 조비의 'A Change is Gonna Come' 등 절묘하게 고른 노래와 대사로 짜인 공연의 감동을 과장한 것일까.
그러나 실제 미국민의 80% 이상이 꿈을 현실로 바꾼 오바마가 변화의 희망도 실현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있다. 외부의 숱한 논평도 오바마는 미국과 미국민의 진로와 운명을 바꿀만한 자질과 신념과 용기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오바마 시대 개막을 환호하는 분위기는 미국인들이 '긍정과 낙관의 국민성'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이걸 성급하다고 여긴다면, 오바마를 선택한 것 자체가 전쟁과 대공황 등 역사의 고비마다 국민통합과 위기극복을 이끌 위대한 지도자를 찾아낸 미래지향적 국민성과 지혜를 과시한 것이라는 지적을 상기하는 게 좋겠다.
우리 자신의 모습 성찰해야
미국 사회의 열광은 역경과 실패를 스스로 딛고 일어서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미국인 자신들에 대한 축하와 격려와 단합의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링컨과 루스벨트와 윌슨과 케네디와 오바마가 아니라, 바로 미국 국민이라는 얘기다.
오바마 집권이 세계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대를 가림 없이 늘 지도자의 이념과 아집과 무능 등을 욕하고 한탄하지만, 과연 우리 자신은 작은 이해와 간사한 고려를 벗어나 나라의 진로와 운명을 걱정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때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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