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역대 처음으로 3년 임기를 채우고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직을 물러난 2007년 8월. 금감위와 금감원 직원들은 그를 위해 '미니홈피'를 선물했다. 재임 중 그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했고, 직원들의 신망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별명도 중국어로 큰 형님을 뜻하는 '따거'였다.
사실 1997년 외환 위기의 책임을 지고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1급)에서 물러나 세무대학장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전전할 때만 해도 그의 '컴백'을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 금감위원장으로서의 재기는 화려했고, 또 성공적이었다. 20년 가까이 끌어왔던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를 매듭지었고,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했고, 금산분리 정책의 완화를 위해 자진해서 총대를 멨다. 그의 강력한 추진력에 상당수 직원들은 "역대 최고의 위원장 중 한 명"이라며 극찬을 아까지 않았다.
그가 추진했던 정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시장주의자. "기업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기업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그의 친 기업적(혹은 친 재벌적) 성향을 둘러싸고 당시 청와대 386 인사들과 상당한 갈등도 있었지만, 심지어 대통령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참여정부 당시 입각했다는 이유로 '참여정부 인사'로 분류를 하지만, 그의 이런 코드를 감안할 때 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는 평가다.
그가 성공한 금감위원장으로 평가되는 것처럼, 훌륭한 재정부장관이 될 수 있을지 아직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이헌재 전 부총리도 과거 금감위원장으로서의 명성을 두 번의 재정경제부장관 시절에는 이어가지는 못했다는 평가. 정부 고위 관계자는 "뚝심과 추진력이라는 장점이 분명하지만, 윤 장관 후보자가 그동안 몸소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한국경제에 비전을 제시한 전례가 없다"며 "그의 장점이 극대화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 후보자는 19일 "목적이 훌륭해도 절차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이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경제 위기를 타개 하기 위해 전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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